손석희에 시선이 머무는 이유


이필재의 '사람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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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첫 학기 첫 시험 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했고, 연구실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눈물을 흘렸다"고 썼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그런 눈물을 그 시절 흘린 건 자신이 그만큼 학업에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고, 그래서 그 시절이 자신에게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그는 회상했다.

손석희그의 이름은 손석희. 지난 2월 MBC 아나운서국장에 선임된 그는
애초 자신이 맡고 있는 프로그램 진행 문제 등으로 국장직을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인용한 글은 몇 년 전 <월간중앙>이 실은 '명사가 말하는 내 인생의 결단의 순간'에 그가 보내온 것이다. 2년 만에 부장에서 국장으로 승진한 그는 이 글에서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스스로 지각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 놓았다. 대학 진학이 남보다 늦었고 그 바람에 사회 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늦어진 이유에 대해 그는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든 게 늦어지다 보니 그는 차라리 여유가 생겼고, 나이 마흔 셋에 유학을 떠난 것도 그래서 벌인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대학원의 침침하고 퀴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식은 도시락을 까먹고 저녁이면 근처에서 햄버거를 사다가 꾸역꾸역 먹으면서 공부해 그의 말마따나 '그 잘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무모했던 시절을 보내면서 그가 얻은 건 여전히 지각 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그가 그때 쓴 논문이 The Study of Public Broadcaster Labor Union Movement in Korea:The Resource Mobilization Strategies for the 1999 Strike(석사학위논문),Univ.of Minnesota,2000이다. 한국의 공영방송 노조운동 연구. 그의 논문은 푸른 수의를 입고 웃고 있는 그의 사진 한 장을 떠올리게 했다.

지난
92년 문화방송 파업 당시 그는 MBC 노조 집행부의 간부였다. 불법파업손석희 주동자로 몰린 그는 '쟁의조정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되었고 20일 간 구치소에 수감된다. 이후 회사측의 소 취하로 석방된 그는 그때 일을 화제로 삼는 것을 불편해 한다고 한다.

그때의 행동이 후회스러워서는 아니다. 자신이 마치 민주화 투사라도 되는양 포장되는 게 부담스러워서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노조 활동의 최대 수혜자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고 한다.

연예 프로그램에 기웃거리는 얼굴 반반한 아나운서에 그칠 수도 있었던 그는 '100분 토론' 사회자로 자리잡았다. 자기 이름을 건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논객 소리도 듣고 있다.

선거 때면 정계 진출설에 시달리는 그는 "단지 방송에 얼굴이 나오고 이미지가 좋다고 정치 참여 얘기가 나오는 건 어색하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에 대해 대기만성형이라고 말하는 건 어쩐지 도식적이다. 스스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지만 그건 그의 선택일 뿐이다. 여전히 지각 인생을 살든, 출세가도를 달리든 자신의 방식대로 절실하게 살아가는 한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