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준 TV 찬조연설


윤여준 “보수인 내가 문재인 지지 이유” TV연설 전문
2012.12.13

보수인사로서 오랜 동안 한나라당 등에 몸담았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TV 찬조연설이 화제다.
윤 전 장관은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12일 밤 TV 찬조연설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아래는 윤 위원장의 TV찬조연설 전문이다. <한겨레>

사람들은 흔히 저를 가리켜서 ‘합리적 보수주의자’다 또는 ‘개혁적 보수주의자’라고 합니다.
제가 평소에 합리적이고 균형잡힌 판단을 중시하면서 정치개혁을 꾸준히 주장한 것을 좋게 보신 분들이 붙혀준 명칭입니다. 합리적이건 개혁적이건 저는 분명히 보수주의자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돕느냐. 궁금하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릴까요?
제가 문재인 후보를 돕는 이유는 우선 지금 유력한 후보 두 분 중 문재인 후보가 민주주의를 더 잘 실천할 지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모두들 지금 국민통합을 말하고 있는데, 두 분의 후보 중 통합을 더 잘 할 수 있는 지도자는 문재인 후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건국이후 이룬 성과가 크게 두 가지죠. 산업화와 민주화입니다. 정말 자랑할 만한 성과지요. 그런데 저는 이 두 가지에 기여한 바가 별로 없습니다.
특히 민주화에 있어서는 민주화 세력의 반대진영에 속해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민주화의 혜택은 누구 못지않게 누린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빚진 사람인 셈이죠. 그런 미안함과 부채의식이 마음 한켠에 늘 있어왔습니다.
또 하나, 저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가 이념갈등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사회갈등의 밑바탕에는 이념갈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소모적인 이념대결을 끝내고 민생을 돌보는 생활정치를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런 국민의 요구를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게 된 것이고 안철수 현상의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번 대통령 선거가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을 완화하고 조절하는데 좋은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면 이 일을 대통령 후보에게만 맡길것이 아니라 이념의 경계선을 가로지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걸 누가 하겠는가.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저 같은 사람이 적임자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 제가 그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느냐?
많은 분들을 만나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물은 좋다. 대통령감이다. 그런데 당은 좋아하지 않는다, 후보는 좋은데 친노는 싫다, 후보는 좋은데 대북정책이 불안하다 그래서 불안하다. 하지만 보수주의자인 제가 본 문재인은 달랐습니다. 오늘 그 얘기를 말씀드리려고 나왔습니다.
제가 문 후보와 처음 마주 앉은 것은 지난 9 24일 월요일, 조찬을 같이 하는 자리였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문 후보가 싫어할 얘기를 먼저 꺼냈습니다. 문 후보는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이유가 어디 있다고 보시는가? 분노의 정치, 분열의 정치를 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문 후보는 진지한 표정으로 저의 지적을 인정하면서 그 부분을 뼈저리게 반성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만일 대통령이 되면 반드시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단서를 붙였습니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듣고 식견과 경험있는 분들의 지혜를 모아서 민주적으로 통합하는 리더십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이라는 얘기였습니다.
문 후보의 말은 화려하지도 않고 매끈하지도 않았습니다. 좀 투박한 듯 하지만 상대방 마음을 울리는 그런 진정성이 실려 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어서 또 그가 싫어할 만한 얘기를 했습니다. 국민통합을 한다면서 국립현충원을 참배할 때 왜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의 묘소를 뺐는가. 통합의 관점에서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
문 후보는 역시 진솔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국가폭력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면 참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저의 역사인식을 한 번 쯤 분명히 해 드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 전까지 문 후보를 TV를 통해 받은 인상을 바탕으로 사람은 착하지만 자기 중심이 약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제가 사람을 잘못 봤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요즘, 리더십 얘기를 많이 하는데 명령하는 게 리더십이 아닙니다. 아랫사람을 휘두르는게 리더십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것을 잘 모아서 좋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게 그게 진짜 리더십이죠. 그게 바로 민주적 리더십이죠.
겨우 두 시간 이야기해보고 사람을 어떻게 아느냐 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중에는 십년을 가까이 있어도 속을 잘 모를 사람이 있고 또 반대로 몇 시간만 얘기해 봐도 속을 잘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지요
문 후보는 처음 마주앉은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자신의 마음을 열고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그런 지도자였습니다.
또 사람들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게 있습니다. 둘이서 얘기를 나누는데 문 후보를 돕는 사람들이 왔다갔다해요. 뭐 전할게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문후보가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나 태도를 유심히 봤습니다. 그런데 아랫사람들한테도 아주 겸손해요. 인격적으로 대하는 거에요.
그래서 아,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을 존중하겠구나. 국민들 앞에 겸손한 대통령이 되겠구나. 국민들 얘기에 귀기울이겠구나. 이런 판단을 하게됐습니다.
대화가 끝나갈 쯤 문 후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즘 잠을 잘 못잡니다. 별안간 불려나온 사람이라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해도 과연 나라를 잘 끌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래서 잠이 잘 안 옵니다는 것이였습니다.
이렇듯 문재인은 자기의 부족함을 남 앞에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나라의 대통령 후보쯤 되는 사람이 그것도 아직 자기편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그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오히려 저는 문재인이라는 사람의 묵직한 자신감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신이 모르는게 많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는 자연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요. 그러면 실수를 막을 수 있지요. 또 남의 말을 잘 듣는 지도자 옆에는 좋은 인재들이 모이게 마련이지요. 그러면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문재인 후보는 차기 정부를 위기관리 정부가 될 것이라고 내다 보았습니다.‘한국 사회의 갈등이 오랜 세월 지나치게 증폭이 돼서 이렇게 가다가는 나라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 후년 경제적으로, 또 외교안보적으로 어려운 시절과 도전이 온다. 그런데 이걸 극복하려면 정부와 국민, 여야가 다 한 덩어리가 돼서
이걸 뚫고 나가야 되는데 갈등이 이렇게 심해지면 그게 안 되지 않냐. 어떻게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겠느냐’ 그게 굉장히 걱정이 된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문 후보는 제게 국민통합위원장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그럴 역량이 없다고 사양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약간 퉁명스런 말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꼭 저 문재인을 위한 것만도 아니고 또 민주당만을 위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윤 장관이 그동안 쓰신 글, , 다 봤는데 평소에 나라 걱정 그렇게 많이 하는 분이니까 이런 국민통합의 일은 좀 맡아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이 말에 제가 거절하기 궁색한 입장이 된 느낌이였습니다.
제 마음이 움직이더라구요. 두 시간 이야기하는 동안 제 마음이 그렇게 저절로 움직이는 것에 제 자신도 놀랐습니다.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거든요.
문재인은 그런 사람입니다. 평생을 자기와 반대진영에 서있던 저 같은 사람을 불과 두 시간만에 ‘같이 손잡고 가자’ 설득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민주적인 대통령감이지요
그렇습니다. 이번 대선은 후보 개인에 대한 인기투표도 정당의 지지를 묻는 투표도 아닙니다. 정치권과 국민, 여와 야를 한덩어리로 만들어서 국민들과 함께 위기를 잘 해결할 지도자를 뽑는 것입니다.
문재인 후보도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이념과 지역, 당파를 뛰어넘어 하나가 되는 대통합을 이루고 국민의 정당, 시민의 정부로 만들겠다고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약속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국민 여러분,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이성적이고 신중하게 판단할 일입니다.
대통령 선거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대통령이 되면 잘 할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문재인 후보는 아시다시피 꾸밀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실 주변에서 조언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듣지를 않습니다. 꾸미는 걸 체질적으로 싫어해요. 그래서 결국 주변에서 포기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당연히 선거운동에서는 불리하지요. 그래도 이렇게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을 보면 물론 정권교체와 새정치에 대한 여망도 있지만 후보의 인물 자체가 대통령감으로 믿음이 간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사실 저는 무엇보다도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잘 할 사람이라는게 안심이 됩니다. 국정을 잘 이끌어 갈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려면, 첫째,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둘째, 민주적인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당 후보도 통합을 이야기합니다. 그것도 대통합입니다. 그런데 통합이라는 게 뭔가요? 그분은 국민통합이라는 게 어느 한 특정집단이나 가치를 중심으로 모든 국민이 뭉치는 것을 통합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통합이 아니라 동원입니다. 유신체제 같은거 아닌가요?
문재인 후보는 제가 직접 보고 듣고 판단한 것이나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을 보건대 민주적인 리더십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해서가 아닙니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분들 중에도 과거 권위주의에 길들여져 있던 분들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말과 행동과, 살아온 길이 일치합니다. 이런 사람 참 드물죠. 그런데, 문재인 후보가 바로 그런 품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대선후보 티비토론을 보신 분들도 느끼셨을 겁니다. 문재인 후보는 상대방과 공통점을 찾아서 차이점을 해소해 나가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지 않았습니까?
통합이라는 것은 대립이나 갈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가치가 존재하는데, 지금까지 갈등이 심했던 것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 내가 가진 이념만이 진리이다, 라는 이념적 폐쇄성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이렇게 해가지고는 공존이 안 되지요. 당연히 통합도 안되지요.
그런데 문재인 후보는 통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대통령 후보입니다.
국민 여러분, 대통령이 갖춰야 될 능력은, 당선되는 데 필요한 능력이 아니라 선출 이후 대통령으로서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 당선 이후의 통치력입니다.
다소 말이 어눌하고, 듣기 좋은 말 하지 않더라도 정말 잘할 사람을 알아보는 것. 그것도 국민들의 능력이고 역량입니다.
이제 우리 정치는 달라져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보수냐 진보냐는 중요치 않습니다. 국민들의 삶을 챙기는 생활정치로 빨리 옮겨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재인 후보가 약속했듯이 완전히 새로운 건물을 짓는 수준으로, 우리 정치의 판을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국민들 앞에 겸손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서로 다른 이해를 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민주적인 리더가 필요합니다.
국민 여러분, 누가 더 민주적인 지도자입니까?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누가 더 적합합니까?
감사합니다.


윤여준 연설, 민주당에 없던 전략의 고리
친노 샴페인 터트리지 말고 ‘문재인 중심’으로 가야 선거 이긴다
2012.12.13   한윤형 기자

윤여준 연설이 세간의 화제다. 어째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아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설명했다는 평가다. 그는 자신이 ‘보수주의자’이며 민주세력의 반대편에 있었던 ‘민주화에 대해 아무 공헌이 없는 사람’이란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런 자신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민주주의를 더 잘 이해하고 국민통합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윤여준의 연설이 말한 것은...

윤여준의 연설은 전반적으로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 사이에서 주저하는 중도층 유권자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을 정확히 짚어서 설명하는 ‘타겟 연설’이었다. 그는 ‘후보는 좋은데 당은 싫다고 하는 사람들’, ‘후보는 좋은데 친노는 싫다고 하는 사람들’, ‘후보는 좋은데 대북정책이 불안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향해 자신이 만나본 문재인은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도 겸허히 수용하고 아래 사람에게도 겸손하게 대하며 다른 진영에서 일하던 자신을 두 시간만에 설득해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윤여준은 ‘선거에서 이기는 능력’과 ‘당선 후 통치를 잘할 능력’을 구별하는 것도 유권자의 역량이기 때문에 다소 어눌해 보이더라도 후자를 잘할 문재인 후보를 선택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의 연설은 민주당의 약점은 후보와 분리해내고, 후보의 명백한 약점을 다른 식으로 접근해서 장점으로 전환해내며, 상대 후보인 박근혜 후보의 이름을 한번도 꺼내지 않으면서도 그에게 가장 아픈 부분만 후벼 파낸다. 그의 연설 속에서 박근혜 후보는 ‘십 년을 알아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되고, ‘통합이 아니라 동원’에 능한 사람이 되고, ‘민주주의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 되며, ‘선거운동만 잘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면서도 그의 말은 자신이 겨냥했을 50-중도층-남성들의 세상 인식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 당선 후 통치역량을 말하려면 후보를 지지하는 정당이나 관료들의 역량까지 평가해야 하지만, 그는 후보 개인의 인품과 리더십에 집중해서 설명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드는 의문은 도대체 왜 민주당은 지금까지 이 박빙의 승부에서 승리를 위해 필요한 중도층을 포섭할 논리를 윤여준처럼 개발하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민주당의 선거전략으로 생각해 볼 때 이는 ‘능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의지’의 문제에 가깝다. 이전 기사에서 지적했듯 (링크) 민주당 측은 포섭해야 할 중도층 유권자들을  ‘돈에 눈이 멀어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이들’, ‘사실 별 생각이 없는 층들’, ‘김영삼과 함께 오락가락한 이들’, ‘민주화 운동과 친노세력의 중요함을 느끼지 못한 이들’ 정도로 치부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안이한 판단의 근거에는 굳이 이들을 설득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는 정세판단이 있다. 트위터에서 관찰되는 문재인 후보의 핵심지지층은 이번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것은 지지층에게 ‘승리’의 희망을 주어 투표율을 높이는 전략이란 차원에선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런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저 투표 독려만 할 뿐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한 다른 접근을 하지 못한다면, 그릇된 정세판단이 ‘뒷심 부족’의 패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민주당의 안이한 정세판단과 부족한 노력

공표된 여론조사를 꼼꼼히 살펴보건대 문재인 후보 측은 분명히 맹추격하고 있고 승부를 초초박빙의 혼전으로까지 몰고 간 것은 사실이나 명백하게 뒤집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오차범위 내 접전이란 건 사실 누가 이길지 모른다는 말과 같고 문재인 후보가 앞선 여론조사의 숫자가 아직까지는 다수도 아니다. 그런데 복수의 정치부 기자들은 현 시점에서 민주당 관계자들이 ‘이번 선거는 이겼다’고 믿는다고 증언한다. 이미 이긴 승부라고 보고 대선 이후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말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세판단의 안이함이 현재 민주당의 주류인 친노 진영의 자기 확신과 결부되는 모습을 보일 때 중도층 유권자들은 심정적으로 표를 주기가 어려운 상황이 된다. 트위터 세계에선 친노 성향의 파워트위터리안 몇 명만 대선 때까지 트위터를 못하게 막아도 문재인이 당선될 것 같다는 푸념마저 나온다.

결국 문재인의 핵심 지지층은 윤여준의 연설에 열광했지만 윤여준이 공략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유권자들은 물론 ‘참여정부 심판론’보다 ‘이명박 정부 심판론’에 마음이 기운 상황이지만 이 시점에서 ‘참여정부 심판론’에 조금이라도 솔깃하는 사람들에게도 다른 사인을 준다면 이 선거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문재인 후보 측의 선거전략은 발이 너무 느리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윤여준의 연설은 이 발 느린 대응을 장점으로 포장해주는 역할을 했지만 초초박빙의 승부에서 남의 표를 조금이라도 더 가져오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은 큰 문제다.

가령 김현철이 사실상 지지선언을 한 시점에서 문재인 후보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한번 찾아가 설득해내는 모양새를 만들어내며 부산경남 지역을 한번 더 흔든다든지, 백의종군을 선언했던 친노 비서관 9(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전해철 의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용익 선대위 공감2본부 부본부장, 박남춘 특보단 부단장, 정태호 전략기획실장, 소문상 정무행정팀장, 윤건영 일정기획팀장, 윤후덕 비서실 부실장) 및 기타 몇몇 인사들의 청와대와 내각 불참여를 선언한다든지, 혹은 극단적으로는 안철수 지지자들을 더 확실히 끌어오면서 정치개혁의 대의에도 부합하는 방식으로 개헌안을 제출한다든지 낼 수 있는 수는 무궁무진한데 사실상 손 놓고 있는 실정이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을 막아내는 능력도 매우 부족하다. 김진표 의원처럼 현 시점에서 동성애자에 반대하는 언행을 하는 것은 통제되었어야 하고, 한화갑이나 박주선 같은 동교동계 인사들에 대한 예우도 필요했다. 동교동계 인사들을 이편에 묶어두는 게 득표확장에 도움은 안 되지만 저쪽에 넘어가면 일정 부분 타격은 있다는 우려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꾸준히 지적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대처가 없었으니 민주당 전통적 지지층의 입장에선 친노들이 옛날처럼 ‘호남에서 표를 덜 얻어야 영남에서 표를 더 얻을 수 있다’는 전략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제기된다. 한 표가 아쉬운 판국에 쓸데없는 의심을 받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친노 때리기'가 아닌 '문재인 살리기'가 필요해

물론 친노 인사들을 캠프에서 배제한 것이 오히려 캠프의 대처능력을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련 시사in 기사) 과거 정부 인사를 무조건 잘라내고 배척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 측은 중도층 유권자들이 문후보에게 가지는 의구심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읽어내야 한다. 그것은 윤여준이 들었다는 그 반응들이다. 비유하자면 그것은 한 남자와의 결혼을 고민하는 여성이 그 남자는 좋은데 시댁의 등쌀과 시누이들의 텃세를 우려하는 상황과도 같다. 남한 사회에서 아직까지 결혼은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집안의 결합이다. 그리고 정권교체는 분명히 후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문제가 된다. 그런 상황에선 전자는 좋아도 후자가 미심쩍어서 손이 안 간다는 상황이 당연히 일어날 수 있다.

실은 이런 구도를 설정한 것 자체가 윤여준 연설의 탁월한 부분이다. 이제 중도층 유권자의 의구심을 덜기 위해 문재인 후보 측이 할 일은 윤여준 연설 동영상을 널리 유포하는 것을 넘어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확실한 리더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친노를 쫓아내야 할 필요는 없지만, 후보가 ‘친노의 문재인’이 아니라 자신의 지도력과 스타일로 정치를 해나갈 것이라는 확신만은 줘야 한다. 만일 친노세력의 백의종군 선언이 필요하다면 이런 맥락에서 선언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친노가 잘못했기 때문에 물러난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의 지도자는 문재인이며 친노가 아닌 친문으로 거듭나겠다는 제스추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윤여준 연설은 사실은 문재인 후보가 측근들의 용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할 위인이란 사실도 드러낸다. 그러한 약점을 강점으로 뒤집기 위해 그는 ‘선거운동을 잘할 후보’vs‘대통령을 잘할 후보’의 구도를 만들어냈다. 탁월하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윤여준의 포장’을 넘어 측근들에 발휘되는 ‘수평적 리더십’의 폐해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참여정부가 보여주었듯 측근 인사나 관료조직과의 민주적인 소통이 너무 강조될 때, 오히려 국민들의 정치적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정권의 대응이 지리멸렬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수평적 리더십'을 넘어서

이런 경우엔 리더가 과감하게 나서 자를 부분은 자르고 혁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령 군대조직만 하더라도 간부들과 공관병에게 엄한 사단장이 사병들에겐 관대할 확률이 높다. 모든 사람에게 관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현실세계에서 충족되기 어려운 일인 건 사실이다. 측근들과 관료조직에게만 ‘수평적 리더십’이 적용될 때, 그것이 국민들의 눈높이에는 ‘수평적 리더십’이기는커녕 ‘정실정치’로 보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리더가 자신의 판단을 통해 조직을 혁신하는 것이 조직 바깥의 사람들 요구를 받아들이는 ‘소통’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추격이 다소 늦게 시작되어 이제야 박빙 상황이 된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마지막으로 넘어서야 할 문턱은 이러한 ‘리더십’을 보이는 것이라 생각된다. 친노들이 샴페인을 일찍 터트려서는 답이 없고 민주당이 문재인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때다. 윤여준의 연설이 보여준 것은 민주당에게 부족했던 이러한 전략의 고리였다. 윤여준의 전략을 민주당 차원에서 재연해낼 수 있어야 이 선거에서의 확실한 승리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