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전 칼럼]개방은 가속화하고 부동산보유세는 완화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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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아담 스미스가 경제학의 창시자로 추앙받고는 있지만, 그의 이론은 논리적으로 치밀하지 못했다. 아담 스미스의 뜻을 이어받아 경제학을 이론적 반석 위에 올려놓은 학자는 데이빗 리카도이다. 아담 스미스도 자본주의 경제의 이윤율 하락 경향을 지적하였지만, 리카도는 왜 이윤율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지를 논리적으로 밝혀냈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는 결국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그의 장기정체이론 덕분에 경제학은 "음울한 과학"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면, 자본주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리카도는 자유무역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온 반면, 그의 이론적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헨리 조지는 토지단일세를 높이 외쳤다. 두 사람 모두 대학에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리카도는 이론가의 이론가로서 당시 경제학계에서 존경받던 거두가 되었고, 헨리 조지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렸다고 알려진 경제학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학 교과서에는 리카도의 자유무역 이론은 빠짐없이 소개되고 있는 반면, 헨리 조지의 토지단일세 이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우스개소리 정도로 소개된다.
현실을 돌아보면 오늘날에도 리카도식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과 헨리 조지식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세계화와 자유무역협정(FTA)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목소리와 부동산에 대한 세금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다. 불과 얼마 전,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갈등에 대한 KBS토론회에서도 이 두 가지 종류의 주장이 나왔다.
한국과 FTA에 유보적이었던 미국 오바마 정부가 이를 긍정적으로 심의하기 시작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실, 세계화와 FTA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세계화는 어쩔 수 없는 추세이고 우리나라와 같이 해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로서는 FTA를 해야 앞으로 경제성장을 계속 이루면서 먹고 살 수 있다는 주장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어떤 제도든지 일단 실시되면 반드시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 보는 사람이 갈리게 되어 있다. FTA도 그 예외는 아니다. 경제학자들이나 FTA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사람들도 이점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손해를 보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면 격렬한 반발이 일어날 것은 뻔하다. 반대자들을 비난만 하지 말고 이들이 왜 반대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태도가 아쉽다.
▲ FTA가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사진은 FTA로 인한 농민의 피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농민단체 기자회견.
FTA는 국익에 도움이 되고 결국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게 된다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왜냐 하면 이제까지의 개방화가 과연 우리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었는지 매우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IMF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가 자본시장을 급속도로 개방하였고, 이 결과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빈부격차는 오히려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가계소득으로 추정해보았을 때 소득5분위배율(상위 20% 소득계층의 총소득을 하위 20% 소득계층의 총소득으로 나눈 값)이 1997년에 4.09이었는데, 1999년에는 5.13배로 높아지더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에는 무려 8.67까지 훌쩍 뛰었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사는 20%의 소득이 가장 못사는 20%의 소득의 9배에 가깝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빈부격차가 급속도로 벌어졌을까? 결국 자본시장의 개방화로 인한 이익이 오직 소수에게만 집중되었을 뿐 전 국민에게 골고루 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이 경제성장을 가져오고 고용을 늘린다고 말하지만, 고용 없는 경제성장을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경험해왔다.
FTA가 무조건 고용을 늘리고 우리 모두를 잘 살게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FTA 실시로 인한 이익으로 손해 보는 사람들을 충분히 보상해주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겠지만, 확실하게 보상해줄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을 만들어내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치밀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FTA를 성사시키는 것보다 오히려 사후대책의 마련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 너무 개방만을 서두른 나머지 사후 보상대책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우루과이라운드 때에도 피해농민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하였다고는 하지만, 너무 엉성하다보니 정작 보상받아야 할 사람들은 밀려나고 엉뚱한 사람들이 보상을 가로채는 일이 많았다.
대체로 보면, 경제학자들, 특히 신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경제학자들은 총량적으로 득이 실보다 크냐 아니냐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누가 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정부 정책의 실시로 인하여 손해 보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정부나 정치권에서 할 일이요 자기들은 알 바 아니라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상당히 무책임해 보인다. 아무리 총량적으로는 득이 실보다 크더라도 소외된 사람들에게 충분히 보상을 해주지 못하는 정책이 반복된 결과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양극화가 심해져서 우리 사회가 불안해지고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결국 장기적으로는 국가적 손실이다.소외된 사람들을 확실하게 보상해주지 못하는 자유무역이나 개방화는 이중으로 빈부격차를 벌이게 된다.
자유무역으로 인한 이익이 소수에 집중된다는 것은 이들이 큰 목돈을 손에 쥐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부동산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풍토에서는 목돈의 가장 좋은 용처는 부동산투기다. IMF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 부동산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게 된 한 가지 큰 이유는 지속적 무역흑자로 형성된 목돈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만일 자유무역으로 인한 이익이 전 국민에게 골고루 퍼졌다면, 아마도 그런 부동산투기 열풍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IMF경제위기 이후에 나타난 우리나라 부동산투기 열풍은 17세기 유럽의 튤립투기 열풍을 연상하게 하였다. 네덜란드가 한창 잘 나가던 때 무역흑자가 계속되면서 부자들이 크게 늘어났는데, 이들이 눈독을 들인 사치품목의 하나가 튤립이었다. 신흥부자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튤립을 가꾸어놓고 자랑하다보니 자연히 튤립에 대한 투기시장이 형성되었고 그래서 유럽에 튤립투기 열풍이 불었다. 튤립 구근 하나의 가격이 웬만한 집 한 채 값보다 비쌌다고 하니 그 열풍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부동산투기는 빈부격차를 더욱 더 악화시킨다. 일반적으로 재산의 불평등은 소득의 불평등보다 훨씬 더 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산을 많이 가진 순서로 나열했을 때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가진 재산의 평균금액을 하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가진 재산의 평균금액으로 나눈 값을 재산 5분위 배율이라고 하는데, 2005년 우리나라의 재산 5분위 배율은 19.5이었다. 재산으로 따지면 상위 20% 부자는 하위 20% 가난뱅이에 비해서 약 20배 부유하다는 뜻이다.부동산투기를 억제하고 빈부격차를 완화하기 위하여 고안된 제도가 부동산보유세이다. 그 중에서도 토지보유세가 핵심이다. 세율이 충분히 높으면 토지보유세는 부동산투기를 억제하고 지가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낳는다.
신자유주의자나 일부 경제학자들은 토지보유세의 이런 효과에 회의적이지만, 근대경제학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마셜은 토지보유세가 통상적 생각 이상으로 광범위한 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음을 오히려 우려하였다.
하지만, 토지보유세의 가장 큰 난점은 조세저항이다. 세율이 약간만 높아도 조세저항이 강하게 일어난다. 보통의 저항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저항이라 더 무섭다. 토지를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다. 이들의 조세저항은 정권의 안위를 좌우할 만큼 크다. 노무현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하여 부동산 보유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였을 때 부동산부자들이 얼마나 세차게 반발하였으며 이들을 옹호하는 보수성향 일간신문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노무현 정부를 성토하였는지를 보면 부동산세금에 대한 조세저항의 강도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토지세의 실효 세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보다 훨씬 낮음에도 불구하고 토지소유자들은 토지세에 거세게 반발한다.그러니 부동산보유세로 빈부격차를 완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토지보유세를 포함한 다각적인 대책이 있어야 함을 강조할 뿐이다. 아무리 개방화가 경제적으로 타당하더라도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개방화로 인하여 손해를 보는 계층을 배려하는 근원적인 대책의 마련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