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이헌재 문제'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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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대선 토론회를 한다면 신자유주의 문제도 토론의 주제로 해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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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강연 장하준, 매일 안철수 옆 이헌재 비판
조성완 기자 (2012.09.23

"자본시장 자유화 정책 때문에 국민들 괴로워지고 국가 불행해진 책임"
"자살률 높아지고 출산율 저하되고 비정규직 급증한 건 모두 이헌재때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22일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의 ‘경제 멘토’로 알려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재차 드러냈다.

장 교수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가진 강좌에서 “외환위기 이후 실시된 자본시장 자유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국민이 괴로워졌고, 우리나라가 갑자기 불행해졌다”며 “요즘 이런 정책 변화를 가져오는데 가장 기여한 이헌재 씨가 다시 정계에 등장했더라. 저는 상당히 걱정된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 자유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이 자살율과 비정규직의 급증, 출산율 저하 등 병폐를 불러왔다고 지적하면서 그 중심에 이 전 부총리가 있다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이 전 부총리로 대표되는 이른바 ‘모피아’ 집단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모피아는 재정경제부(MOFE)와 마피아를 합성한 말로 과거 재경부 출신들이 거대 세력을 구축해 경제계를 장악했다는 뜻이다. 이 전 부총리는 ‘모피아’의 대부로 불리며 국내 경제·금융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교수는 ‘모피아가 경제 전반을 장악한 상황에서 이 전 부총리의 캠프 합류가 문제가 될 수 있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 분이 그 진영(안철수 캠프)에 들어가면 자연스레 그 쪽(모피아)의 대변인이 되는 것이며 그 쪽에서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전달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이어 “모피아 세력은 이헌재 밑에 있던 사람들”이라며 “모피아가 재벌들과도 결탁됐지만 지금은 국제금융자본과 더 결탁돼 있다. 그래서 외환은행도 팔아먹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21일에도 장 교수는 “이 전 부총리의 정계 진출을 누가 좀 말려줬으면 좋겠다. 제발 그 양반 어떻게 좀 해 달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특히 “개인적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닌데,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해 이 지경을 만든 그가 아무런 사과 없이 (안 후보와 함께) 다시 나온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안철수, '이헌재 문제' 어찌할 것인가?
12.09.24

쓰더라도 자신의 색깔 보여준 인사 먼저 영입했어야

그러나 한 가지 큰 실수가 있었다. 대선 후보 출마 선언장에서 이헌재씨와 악수하는 사진이 언론에 나가게 함으로써 마치 이헌재씨가 안철수 표 경제정책의 얼굴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관료는 어찌 보면 최고로 유능한 집단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막연히 문제 많은 존재들이라고 여기던 정치인들이 막상 그들을 직접 대하면 확 끌리기 쉽다고 한다. 그들만큼 문제를 진단하고 근거를 제시하고 대안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진표씨를 극찬하고 이헌재씨를 기용했던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관료들과는 대조적으로, 교수나 지식인들은 비판과 논리에는 강하지만 막상 문제의 진단과 근거 자료의 제시에는 약한 경향이 있고 더욱이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젬병이다. 그래서 그런지 역대 대통령들도 정권 초기에는 주로 지식인 그룹을 전진 배치하다가도 시간이 지나가면 관료에 의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경제관료는 대단히 유능한 집단이지만 속성상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가치를 실현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그들이 목을 매다시피 하며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경제성장률 제고와 같은 가시적인 성과뿐이다. 그러니 그들은 천생 기술자들이다.

그럼에도 경제관료들은 자신들이 모든 문제를 꿰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며 정책 방향까지 좌지우지하려 한다. '그렇게 순진하게 가치를 추구하다가는 경제가 망가지고 말 것'이라며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협박'하는 것은 그들의 특기다. 이미 그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대통령이 그들의 '협박'에 넘어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경제가 망가지는 것은 대통령에게는 가장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2004년에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우왕좌왕했던 것도, 노무현 대통령이 어처구니없게도 한미 FTA를 밀어붙이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안철수 옆 이헌재, '모피아'의 권토중래?
임경구 편집국장   2012-09-17

DJ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비상경제대책위 실무기획단장으로 이헌재를 발탁했다. DJ 정부 출범 후 첫 금융감독위원장에 임명된 그는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을 전권을 받아 추진했다. 2000년엔 재정경재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외환위기 극복이 국가적 과제이던 시절, '구조조정의 달인'이란 별명이 그에게 붙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 '삼고초려' 해 경제부총리로 그를 다시 불렀다. 그는 "성장에 중점을 두겠다"는 취임 일성으로 시작해 분배에 중점을 둔 젊은 참모들을 향해 "시장경제 뒷다리 잡지 말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부동산 투기 논란 끝에 1년여의 임기를 마치고 낙마한 그에게 노 전 대통령은 "해일에 휩쓸려가는 장수 붙잡으려다 놓친 심정"이라고 극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이헌재'란 이름만큼 누대의 정권을 이어가며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드물다. 외환위기 당시 금융·기업 구조조정이라는 험한 일을 도맡아 처리한 각인 효과일 것이다. 관료로서 순탄치 않은 경로를 밟았음에도 아직까지도 그는 '재무부가 낳은 3대 천재' 중 한 명으로 회자된다. 반면 "한국 금융산업이 발전하려면 '이헌재 사단'이 청산돼야 한다"(이동걸 금융연구원장)는 식의 부정적 평가도 늘 따라붙는다

이들은 가계대출을 방치하고 금리를 낮춰 부동산 폭등을 조장했다. 공공부문 민영화를 주도했고 금융기관을 해외 투기자본에 팔아넘겼고 금산분리 폐지를 이끌었고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를 주창한 것도 이들이다. 이로 인한 문제들이 불거질 때마다 대통령은 고개를 숙였지만, 이들의 '정책적 판단'에는 언제나 면죄부가 부여됐다. "정권은 유한하고 모피아는 영원하다"는 속설은 그래서 생겨났다.

문제는 합법적 조폭 같은 이들의 힘이 '유능함'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똑똑한 경제관료들의 실력에 매료됐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기획형 관료보다 위기관리에 능통한 재무, 금융통이 먼저 눈에 들어온 탓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초 "현장은 모르면서 탁상공론만 하고 계파 만들어 상전 노릇이나 하고… 이런 식으로 일을 하니까 모피아란 소리를 듣는 게 아니냐"고 견제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강만수로 대표되는 '모피아의 거성들'에게 포위됐다. 이 대통령은 모피아의 힘을 과소평가해 오히려 쉽게 포섭된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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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이정재의 같은 점, 다른점 7가지
머니투데이 이백규 기자   입력 : 2004.02.20 11:17

폭탄주 vs 사색, 귀족적 vs 서민적…시장친화 합리 실용주의 공통점도

이헌재 신임 부총리겸 재경부장관이 연일 새로운 뉴스를 쏟아내고 있던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감원 건물 11층 금감원장실. 이정재 금감원장은 이부총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잘하셨습니다. 잘 될 것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뭘 그런 것까지 신경 쓰십니까. 놔둬도 되실 것입니다." 당시 업무 보고차 그자리에 있었던 직원이 기자에게 전해준 말이다. 두가지 정도 토픽에 하나는 찬성, 하나는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것으로 감 잡혔다고 그 직원은 말했다.

비서실 직원들에 그 내용을 물어보니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거듭되는 질문에 다만 부총리와 금감원장은 자주 전화통화하는 것 같다고만 했다.

◇ 서로 믿고 맡기는 형제 같은 사이

금감원과 재경부 직원들에 두사람의 관계에 대해 물어 보았다. 이부총리가 현직 장관급중에선 아마 유일하게 터놓고 얘기할 상대가 이원장일 것이고 서로가 업무상이나 인격상, 개인적으로도 믿고 의지하는 사이일 것이라는 대답들이었다. 99년 이헌재 위원장 시절, 위원장 방에 어깨펴고 들어갔다 웃으며 나오는 사람은 당시 이정재 부원장과 이종구국장(지난 2월초 감사에서 퇴직)정도 였다고 한다.

지금의 이헌재-정재 라인업은 98,99년 이규성 재무장관에 이헌재 금감위장 때처럼 보기 드문 명콤비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부총리가 제강공명 같은 전략가라면 위원장은 GE의 잭웰치 같은 집행가다. 부총리가 치고 나가면 위원장은 수습을 잘한다.

둘이 호흡을 맞추면 그동안 청와대, 재벌, 은행장, 야당, 여당에 밀리던 경제정책 리더십을 다시 찾아와 각 세력간 상호 견제와 긴장감 있는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다. 힘있는 부총리의 등용과 위원장의 보다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제 경제사회는 비로소 정립됐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 청와대 재벌총수 은행장과의 균형

재정금융과 거시경제의 담당부서인 재경부 장관이자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총리와 금융의 현장 총사령관인 금감위장. 금융에 관한한 법제정권 등 일부 업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분야 즉 금융의 실질적 책임자인 금감위원장겸 금감원장과 일부 금융분야를 포함한 경제 전체를 관장하는 재경부장관.

둘은 실질적으로 금융 실물경제와 거시경제등 우리 경제 모두를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막강 파워 두 기관 수장 사이의 공적-사적 관계상 신뢰는 99 1월 이헌재 당시 금감위 위원장겸 금감원장이 이정재 예금보험공사 전무에 수석 부원장 자리를 제의하고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더욱 견고해졌다.

당시 위원장은 "전 간부 사원 앞에서 지금부터 금감원장은 이정재"라고 선언했다. 믿고 맡기고 그래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업무도 신바람이 나서 성과가 배과되는 이헌재식 용병책이었고 둘의 인연은 이렇게 나이스하게 시작됐다.

◇ 같은 점 다른점 7가지

이헌재 부총리와 이정재 위원장은 비슷한 점보다는 다른 면이 더 많다. 그래서 서로 보완재로 명콤비가 될 수도 있고 안맞아서 틀어질 수도 있다. 같은 점, 다른 점 7가지를 정리해봤다.

헌재 정재로 같은 재자 돌림이니 사촌이나 팔촌 되는게 아니냐는 택시기사의 질문도 있었지만 본이 전주와 광주로 다르고 한자도 憲宰 晶載로 달리 쓴다.

그러나 본인들은 물론 그 집안 사람들은 자타공인 명문대가의 실력자들인 점은 비슷하다. 부총리는 경기중고에 서울법대, 위원장은 경북고에 서울상대를 나온 수재급 엘리트들이다.

부총리가 44년 원숭이 띠, 위원장은 46년 개띠로 부총리가 나이도 두살, 행시도 6(68) 8(70) 2년 위 이다.

하지만 공직생활은 둘이 같이 시작했다. 69년 같은 해에 부총리는 재무부 기획관리실 사무관으로, 위원장은 한국은행 행원으로 사회 첫 발을 내딛었다. 위원장은 넉넉치 않은 집안 살림 사정으로 당시 월급을 많이 주는 한은에 입행했으나 뜻한 바가 있어 한은에서 퇴직하고 70년 행시에 합격했다.

◇ 귀족적 서민적

둘째, 헌재 부총리는 귀족적이라면 정재 위원장은 서민적이다. 부총리는 취임식날 저녁 만찬을 1급등 주요 간부 20여명과 함께 발렌타인 17년으로 폭탄주를 만들어 3번씩 돌렸지만 정재 위원장은 흥청망청하기 쉬운 증권맨등 금융인에 귀감기 되고자 취임후 "감독원 술은 소주, 폭탄주는 소폭주"로 선언했고 지금도 그 약속은 지켜지고 있다. 내부 직원끼리든, 기자든, 외부 피감대상 금융인이든 소주가 윤리가 되었다.

부총리는 강북 한남동 고급 빌라에 살지만 위원장은 가락동 중급 아파트에 살고 있다. 부총리는 골프등으로 씀씀이가 크다는 얘기를 듣지만 위원장은 결혼한 장남 집 장만을 못해주어 대신 변두리 넓은 평수로 이사가서 같이 살고 있다.

부총리는 요정과 호텔 음식점을 주로 찾지만 위원장은 구내 식당과 외식이래 봐야 기껏해야 노량진 수산시장의 콘크리트에 허연 횟칠한 백열등 켜진 횟집이나 여의도 삼겹살, 갈비 집등을 가끔 간다.

◇ 구본무와 골프, 친구와 라운딩

부총리는 취임 첫날 공식 기자회견에서 "지난 일요일 그 좋아하는 골프를 취소하고 취임사를 썼다"라 할정도로 골프를 좋아한다. 98년 외환위기로 전 공무원들의 골프장 금족령이 내려졌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는 이규성 재경부 장관도 안치는 골프를 거의 매주 즐겼다(이규성 장관이 99 41일 환란후 첫골프를 치면서 재경부-금감원 직원들은 골프를 재개했다).

부총리는 얼마전 구본무 LG그룹 명예회장과 몽골에서 라운딩하는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3(일주일 3번 라운딩)에서 주사파( 4번 라운딩으로 히로폰 주사 맞을 정도의 해피한 상태)로 등급상향할려 할 때 부총리로 임명돼 주1파가 된 것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위원장은 즐기기는 하지만 누가 치자하면 그때서야 치는 정도고 그것도 피감대상은 피하고 동창이나 내부직원, 기자들 정도가 상대다.

◇ 침묵은 금이냐 돌이냐

셋째, 부총리는 말이 많지만 위원장은 말이 적다. 둘다 그 정도가 과하다 할 정도다.

부총리는 일자리, 접대비, 성장 위주 정책, 기업가정신에서 보도통제, 인터뷰 중단 등 많은 말들을 하고 있다. 지난 11일 취임 첫 공식 기자회견에선 당초 예정된 15분을 넘겨 1시간 넘게 기자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국회에선 어느 의원의 "총선용 비정규직 부총리"라는 비아냥에 "그러면 내가 비참해진다""그건 그렇지 않다"고 맞받아치고 "발언기회를 달라. 오해니 해명하겠다":잘못 알고 계시다"등등 한발도 밀리지 않고 당당히 맞섰다.

부총리가 '유일하게 고개숙이는 사람'으로 통하는 부인 진진숙여사는 어디 에선가 결혼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3치의 혀"라고 한적 있다(지난 11일 취임 회견이 6 30분을 넘기자 부총리 핸드펀이 울렸고 부총리는 다 들리는 소리로 "안 받은면 큰 일 날 곳"이라고 말해, 기자들을 긴장시켰으나 "오늘은 늦게 들어갑니다"라고 말해 부인 전화임을 눈치챈 참석자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었다.

반면 위원장은 경상도 사나이(경북 영주 출신)식으로 말을 아낀다. 위원장이 10을 하고 1 한 것처럼 말한다면 부총리는 거꾸로다. 금융검찰인 감독원으로서의 위상 때문에 그렇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타고난 것 같다. 작년 317일 취임식날 회견 기사를 보니 노코멘트나 단답이 다였다.

(질문-공식적인 내정 통보는 언제 받았나▲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는게 좋겠다/ - 부위원장 인선 문제와 금감위.금감원의 인사계획은▲부위원장은 재경부 장관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만큼 내가 언급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 금감위원장의 임기가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았는데▲개인적인 생각은 있지만 이 자리에서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등 이런 식이다)

◇ 악동형 대 모범생형, 튀는 대장형 대 세심한 큰 형님형

넷째, 높은 도덕성은 유사하나 개인 스타일은 차이가 많다. 이부총리는 위원장중 유일하게 감방에 가지 않았다. 부총리는 2000년 재경부 장관때 권력 실세 들에 밉보여 계좌추척까지 받았지만 뇌물은 한 푼도 안 나와 담당 검사조차 놀랐다고 한다. 위원장도 당대 잘나가던 경제 관료중엔 형사처벌 받지 않고 살아남은 몇안되는 관료중 하나다.

둘다 돈에 관한한 자유롭다. 부총리는 워낙 집이 부유하고 애들 다 키워놓아서 그렇고 위원장은 청렴한 생활이 몸에 배어 있는데다 막내 아들이 곧 대학을 졸업하면 돈 쓸 일이 줄어든다.

부총리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학창시절 '악동'처럼 느릿느릿 갈지자식 걸음이 트레이트 마크라면 위원장은 의자에 앉아 손으로 턱을 괸채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 상징이다.

부총리가 호탕하고 시원시원하고 전략가 스타일이라면 위원장은 조용조용하고 내향적이며 집행가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심하게 표현하면 부총리는 '너무 튀는' 대장형이라면 위원장은 '좀 세심한' 큰 형님 같은 형이다.(그의 인간미는 말수가 적어서 그렇지 유명하다)

◇ 가장 좋아하는 것들, 폭탄주 대 사색

다섯째, 가장 좋아하는 것은 부총리는 저녁 퇴근후 이러저런 사람들과 폭탄주 모임을 갖고 왁자지껄 서로 말하는 것이고, 위원장은 혼자만의 사색을 즐긴다. 부총리가 접대비 50만원 소동을 가져온 발언을 한자리나, 유인태 정무수석으로부터 마지막 입각 권유를 받던 자리에도 폭탄주가 있었다.

이위원장은 아침 8시 전후 출근 11층 위원장실에서 국회의사당과 증권사 본점 빌딩과 은행 건물, 그리고 미니 숲의 여의도 공원과 한강을 내려다 보며 사색을 즐긴다.(90년대 양재동 조세연구원 파견 근무시절부터 사무실에서 내려다보는 것을 즐기게 됐다고 한다. 그때 그는 양재동 저 많은 빌라와 대저택, 그 자체 및 주인에 대한 과세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해 국가 재정을 살찌울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집에 가선 클래식에 푹 빠져 수백년전 베토벤 쇼팽의 시대로 돌아간다.(그는 학창시절 합창단원에 야구선수였다)

그런 부총리가 요즘엔 조찬 강연이 많아 술자리도 잘 안가고 9시 이전에 귀가한다.

◇ 관치대 시장주의

여섯째, 경제 정책에 관한, 금융정책에 대한 입장은 명확히 드러나는데 다른 분야는 모호한 구석이 많다. 우선 금융분야. 이헌재 부총리는 "시장은 어린아이 장난터가 아니다. 어디가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지 알고 있다. 시장이 부르면 언제든지 정부는 들어간다(개입)한다"고 말했고 이는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 몇몇 은행장에 대한 경고로 시장은 받아 들였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는 '세련된 관치주의자'의 복귀와 시장에 대한 명령으로 해석했다.

반면 이정재 위원장은 포베어런스(인내) 주의자다. 금융감독당국자는 개입의 유혹이 크지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때까지, 가격기구가 움직일 때까지 가능한 인내하고 기다릴줄 알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LG카드 사태때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개입을 자제하다(그래서 김진표 부총리 팀이 수습을 주도한다). 막판에서야 약간 발을 담갔다.

시장의 자율정화와 복원력을 믿고 있고 금융산업의 발전과 한단계 질적 성숙을 위해선 민간 금융기업들이 서로 피나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전투를 벌여야 하고 당국은 그 판이 깨지지 않고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의무만을 수행해야 한다는 소신이다.

이에 대해 관치냐 방치냐, 언제까지 인내냐 등등의 논란이 분분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연두기자회견에서 "LG카드사태는 산업은행이 너무 깊숙이 빠져 든게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다.

◇ 금융인이 좋아하는 인물들

그래서 금감원 직원들과 금융계 종사자들은 이정재 위원장을 좋아한다. 지난해 3월 위원장 취임 2개월전 감독원 노조에서 차기 위원장 후보 설문조사한 결과 당시 이 전재경부차관이 131(22.1%) 1등 나왔다.

(당시 머니투데이에 소개된 기사다. 이정재 전 재정경재부 차관이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이 실시한 차기 금감원장 후보 설문조사에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 금감원 노조는 지난1 14일부터 18일까지 전직원을 대상으로 신임 감독원장 임명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총응답자 594명중 22.1% 11명의 후보 가운데 이 전 차관을 차기 금감원장 적임자로 꼽았다고 22일 밝혔다. 이 전 차관 다음으로는 정기홍 금감원 부원장(17.4%), 이필상 고려대 교수(13.0%) 등이 뒤를 이었다. 11명의 후보를 제외한 인물중에서는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21)과 정운찬 서울대 총장(9) 등이 추천됐다.

금감원장 선임 기준으로는 중립성(37.6%)이 가장 중요한 자질로 꼽혔고 전문성(
25.4%), 인품(17.7%), 개혁성(14.8%) 등의 순으로 나타나 금감원 직원들은 금융감독기구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을 원장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조는 이날 설문조사 결과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민참여센터에 제출할 계획이어서 차기 금감원장 인선에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책 집행 과정에서도 차이를 엿볼 수 있다. 금감원에 내려오는 역대 위원장들의 비유 하나.이정재 위원장은 보고 받고 파악하는데 1(이미 내용 숙지), 의사결정하는데 1주일, 실행하는데 1달 걸린다면 이근영 전위원장은 그 정반대고 이헌재 전위원장은 둘을 섞어 놓은 것같다고 한다.

위원장은 머리가 좋고 업무 지식이 많아 금방 파악하지만 실행의 신중함을 강조하지만 부총리는 과정마다 시원시원하다는 의미로 금감원 직원들은 그 표현을 쓰고 있다.

◇ 유연한 현실론자 대 고지식한 원칙론자

거시에 관한 부총리는 성장론자이지만 위원장은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부총리는 임명 통보를 받은 지난 10일 거나하게 한잔하고 귀가하던중,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과 조우, 한남동 빌라에서 마루 바닦에 같이 덮석 앉아, "이젠 경제 성장에 주력할 때다"라고 비공식 1성을 날렸다.

부총리는 현실론자다. 접대비 실명제 50만원이 현장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자 그정책의 당위성과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시기가 안좋다. 현실에 어긋난다"는 명백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부총리는 취임사에서 "비록 일시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못되더라도 당장에 일자리를 늘리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과도기적인 연계정책이 시급합니다. 아울러 신용불안, 노사갈등 등 미시적인 애로현상을 극복하고 구조적인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정책의 현실성을 강조했다.

◇ 현실주의파냐 정치적이냐

이를 어찌보면 당국자로서 당연한 정책 발언이지만 야당에선 총선용 정책의 신호탄이라며 '정치 부총리'로 몰아갈 태세다. 야당 일각에선 그래서 그에게 현실주의라기보다는 '정치적'이라는 표현을 들이댄다.

이부총리는 지난주초 국회본희의 답변에서 "나는 김진표 부총리와는 다르다. 그가 완벽을 추구했다면 나는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일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정재 위원장은 맡은 직책상 거시에 관한 철학을 밝힐 기회가 거의 없었다. 금융과 시장에 대한 정책 발언으로 미루어 보건대 원칙론자, 시장론자로 비춰지고 있을 뿐이다.

이정재 위원장이 취임직후 간부들에게 "내 임기는 하루다"고 한 말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아침 8시 출근, 단두대에 목을 내놓았다가 7시 퇴근때 거둬들인다고도 했다. 물에 빠져도 지푸라기 안잡는 옛날 양반의 옹고집과 추상 같은 기상을 엿볼 수 있다.

◇ 시장친화 온건 합리적 실용주의자는 공통점

일곱째, 이정재 위원장은 주로 금융(정책) 30년 이상 몸 담았기에 보수가 몸에 뱄다. 이런 보수성은 부총리도 마찬가지다(부총리는 MS워드 문서작성에 서투른 컴맹 수준이다)

둘다 시장을 알거나 시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온건 합리주의 실용주의자라는 공통점은 있다. 부총리가 00 8월 재경부 장관 퇴임 이후 36개월만의 역사 현장으로의 컴백이어서 그런지 매사 한참 "힘이 들어가 있다"면 위원장은 뺀 힘을 서서히 이제 다시 넣으려 하고 있다.

◇ 대통령의 약속, 그리고 영웅을 기다리며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시 경제의 근간을 흔들기 마련이다. 당장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은 두고두고 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경제관료들이라면 한 두번 경험한 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은 환란 이전의 금융.기업 부실이 상당부분 재정.가계 부실로 옮겨간 데 불과한 때다. 강도는 덜하지만 경제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둘은 신자유주의적 개혁 이후의 우리 경제사회, 금융사회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당장의 현안은 평소 실력대로 하고 10-20년후를 내다보고 한국경제를 먹여 살리고 살찌우게 할 미래의 캐시카우,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소프트랜딩 시켜야 한다.

정치와 경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부총리는 경제 수장인 동시에 정치적인 자리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금감원장은 좀 다르다. 금융과 정치의 만남은 외환위기의 근인이 됐던 관치금융을 잉태한다.

지난해 47일 노무현 대통령이 금감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향후 5년간은 표 떨어지고 인기가 없어진다는 이유로 금융정책에 간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니, 여러분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믿을 수 있는 금융체질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것을 2000여 금감원 직원들은 기억하고 있었고 여의도 금융시장도 이를 잊지 않을 것이다.


실력과 안목을 갖추고 개인적으로 때도 안묻고 도덕적인 두 정책 시장의 리더들이 정치의 풍랑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그 결과 전임자들과 달리 과연 퇴임후에도 경제계와 오피니언 리더층으로부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추앙을 받을 수 있게 될른지,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희귀해진 사계의 권위자로서 '작은 영웅'이 탄생할수 있을른지 지켜봐야 겠다.

◇ 이헌재는 누구인가

▶ 기 본 사 항 ◀
▣ 성 명 : 이헌재 (李憲宰) Hun-Jai Lee
▣ 성 별 :
▣ 본 관 : 全州
▣ 생 년 월 일 : 1944 04 17 (양력)
▣ 띠 : 원숭이
▣ 출 생 지 : 중국
▣ 본 적 : 서울 종로구 명륜동4 8
▣ 원 적 : 서울
▣ 직 업 사 항 : [현직]정무직공무원
[전직]기업인
▣ 현 직 : 재정경제부 장관 부총리 겸임(4)
▣ 직 장 주 소 : 4277-25- 경기 과천시 관문로 88 과천정부청사 1
▣ 직 장 전 화 : 02-503-9001
▣ 종 교 : 천주교
▣ 자 녀 수 : 1 1
▣ 취 미 사 항 : 바둑 골프
▣ 혈 액 형 : B
▣ 신 장 : 168
▣ 체 중 : 68


▶ 학 력 사 항 ◀
기 간 학 교 명 전 공 명 학력사항/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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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 1962 경기고등학교
1962 - 1966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1980 - 1981 보스턴대학교대학원 경제학 석사
1982 - 1982 하버드대학교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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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지인 사 항 ◀
관 계 이 름 생년월일 직 업 / 직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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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이강하 李康夏
모 변화라 邊華羅 1914/09/25
장인 진의종 陳懿鍾 1921/12/13 별세,국무총리,국회의원
배우자 진진숙 陳眞淑 1944/04/14 []한양대 산업미술대 공예과 부교수
장녀 이지현 李至絃 1968/08/02 국가안전보장회의 대변인
장남 이동현 李東炫 1971/05/11
교우 조영일 趙鍈一 1943/08/05 경기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교우 백영철 白榮哲 1943/05/30 건국대 정치대 정치행정학부 정치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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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 력 사 항 ◀
기 간 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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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경력]
196808 - 6회 행정고시 합격
196901 - 197001 재무부 기획관리실 사무관
197001 - 197308 재무부 이재국 사무관
197210 - 197303 IMF연수원 통화신용정책과정 수료
197305 - 197308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 파견근무
197308 - 재무부 서기관(IBRD주재관)
197308 - 197412 대통령 경제비서실 근무
197412 - 197803 재무부 이재국 금융정책 과장
197803 - 197909 재무부 재정금융심의관(부이사관)
197909 - 198006 한국개발연구원 초청연구원
198211 - 198403 대우 상무이사
198403 - 198502 대우반도체 대표이사전무
198502 - 기업금융정보센터 사장
198502 - 199109 한국신용평가 대표이사사장
198603 - 재무부 금융산업발전심의위원회 위원
199109 - 199603 증권관리위원회 상임위원
199601 - []바른시정시민위원회 행정.경영부문 위원
-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자문위원
199701 - []금융개혁위원회 위원
199703 - 재정경제원 금융산업발전심의위원회 증권부문 위원
199703 - []조흥은행 비상임이사
- []&장법률사무소 고문
199712 -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실무기획단장
199803 - 200001 초대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장관급)
199803 - 199812 18대 은행감독원 원장
199803 - 199812 8대 증권감독원 원장
199810 - []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
199901 - 200001 초대 금융감독원 원장
200001 - 200008 3대 재정경제부 장관
200005 - 국무총리소속 행정협의조정위원회 당연직 위원
200106 -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자문기구 중소기업경영전략위원회 위원장
200106 - []()KorEI(Korean Enterprise Institute) 이사회 의장
200111 - []&장법률사무소 비상임고문
200203 - []서울대 경영대 초빙교수
200212 - [](사단)한국이사협회 회장
200402 - []4대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

[기타]
199809 - 글로벌파이낸스(GF) 국제금융계를 주도하고 있는 힘있는 600명에 선정
199905 - 홍콩의 월간 아시아머니지로부터 올해의 구조조정기관장으로 선정
199905 - 99년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에서 16위로 선정
199906 - 미국 경제주간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하는 아시아개혁을 주도하는 지도자 50인으로 선정
200005 - 주간지 아시아위크 아시아파워50 16위로 선정
200005 - 홍콩 금융전문지 아시아머니지 올해의 재무장관에 선정

이정재는 누구인가

▲경북 영주(57)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69년 한국은행 입행 ▲행시 8회 ▲재무부 이재국장, 재무정책국장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예금보험공사 전무이사 ▲금융감독원 부원장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재정경제부 차관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이경재 전 중소기업은행장이 맏형이고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둘째형. 부인 박금옥(朴今鈺)(52) 2.



이정재(李晶載), LEE JUNG JAE
1946.10.19() , 개띠 ,
금융감독원 원장

기본 사항
구분 내용
출생지 경북 영주
직업 공무원, 차관
현직2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직장주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27번지
직장전화 (02)3771-5000
E-Mail chairman@fsc.go.kr
자녀 2
인물평 담백한 성격에 말수도 적은 '선비형', 하지만 복잡한 현안에 대한 판단력과 분석력이 뛰어나며 소신과 배짱도 있다
학력 사항
기간      내용
~          1963    경북고 졸업
~          1969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 졸업
경력 사항
기간      내용
1969     한국은행 입행
1970     행정고시 제8회 합격
1991.03 재무부 이재국 국장
1994.05 재무부 재무정책국 국장
1995.01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겸 사무처장
1996.06 예금보험공사 전무
1999.01 ~         2000.01            금융감독원 부원장
2000.01 ~         2000.08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2000.08 ~         2001.03            재정경제부 차관
2001.08 법무법인 율촌 고문
2003.03 ~                 금융감독원 원장
2003.03 ~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2003.05.29         노사정위원회 특별위원
가족 사항
관계      이름      생년월일            근무처   직위
배우자   박금옥(朴今玉)    1951.01.15         신구대   교수
장남      이종현(李鐘炫)    1974.02.28                    
차남      이종훈(李鐘燻)    1977.06.26                    
         이경재(李景載)    1939.01.30         중소기업은행장            
         이명재(李明載)    1943.03.05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변호사
상훈 사항
▶ 홍조근정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