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 사이에 갇혀 있는 북한인권 – 고은태, 리트머스


북한인권을 보는 시각의 검토 - 고은태
2012/06/07 03:01 고은태

민주통합당의 종북논란에서 시작해서 임수경씨의 폭언사건, 그리고 이해찬씨의 북한인권법관련 발언과 생방송 인터뷰 중 일방중단 사건에 이르기까지, 북한문제와 북한인권에 관한 보수의 총공세가 시작되었다.

지난 10년 가까이, 북한인권문제는 대한민국 극우파, 아니 보수진영 전체의 가장 큰 히트상품이었다. 그에 반해 인권운동진영이나 진보적 정치세력은 무언가 수세적 입장에 몰려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양자의 입장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검토해보자. (1)

(1) 실제로는 진보진영이든 보수진영이든, 각 진영 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이들을 하나로 싸잡아 비교하기는 힘들다. 다만 이 글은 북한인권을 바라보는 시각을 마련하기 위한 일종의 연습이기 때문에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만을 위주로 하여 비교하였다.
또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두 접근법에 대한 실질적인 가치판단 역시 가급적 배제하고 그 논리적 정합성을 위주로 보고자 한다.

보수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주장한다. 북한의 인권상황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참상이며, 이를 외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혹은 같은 민족으로서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권의 보편성 주장과 민족애가 동시에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국제적으로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 북한정권을 압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북한인권을 개선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굳이 찾아본다면 북한체제의 전복이 방법론으로 제시되는 정도일 뿐이다. 실제로는 북한정권을 압박하는 것보다는 남한 내의 다른 세력을 억압하는데 더 열심인 것처럼 보인다. 북한인권을 거론함으로써 이들이 남한 내에서 얻는 정치적 이익이 워낙 크기 때문에, 때로는 어떤 것이 주된 목적인지 의심스럽다. 가장 치명적으로, 보수는 막상 남한 내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시한다. 이들이 과연 다른 사람들을 북한인권문제를 무시한다고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2)

(2) 보수진영 내에도 북한정권의 전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북한인권운동이 존재한다. 사실 체제의 전복을 목적으로 하는 운동은 정치운동으로 분류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일 이들을 인권운동이라고 본다면,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과 같은 정당도 남한의 인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니 인권단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북한인권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비교한다는 측면에서 이들을 다루고 있다.

진보라고 부를 수 있을 반대편 입장은 보수의 주장이 북한주민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북한인권상황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서는 공개적으로 문제를 크게 제기하는 것보다 평화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점진적으로 인권이 개선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인권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부족, 혹은 북한 인권문제를 초래한 전체적인 상황에 대한 고찰의 필요, 북한 스스로의 해결을 강조하는 데에까지 주장이 나아가기도 한다. 이들은 북한보다는 당장의 우리 문제이고, 실질적 인권진전을 이룰 수 있는 남한의 인권에 더 중점을 두는 경향을 보인다. (3)

(3)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정보부족, 역사적 맥락의 강조, 자체적 해결의 논리 역시 인권운동진영 보다는 정치권을 포함하는 진보진영의 주장인 경우가 많다. 물론 소위 '좌파'의 경우에는 이런 논리에 단호히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이런 좌파적 주장이 진보 내의 다수파는 아닌 듯 하고, 밖에서 보았을 때도 이들의 입장은 무시되고는 한다.

그러나 정보부족의 경우, 이미 국제단체들이 보고한 북한인권문제도 상당히 많은데, 이를 무시하는 것은 동일한 단체가 국내인권상황을 비판하거나 개입했을 때 진보가 보이는 환영의 태도와는 모순된다. 더구나 실효적 수단이 없기 때문에 침묵한다는 것 역시 옹색하다. 인권문제를 제기할 때 반드시 실효적인 결과를 고려하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북한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거나, 내재적 접근법을 주장하는데 이르면, 스스로 주장하는 실효성보다는 총체적 인식에 집착하여 이미 인권의 보편성과 국제적 연대의 원칙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되고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이제 구체적인 정책의 문제에서 두 입장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자.

UN인권이사회에 북한인권에 대한 결의안이 올라오는 경우, 보수는 이에 적극 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인권이 가지는 보편적 성격, 그리고 인권의 문제에는 모든 국가가 관여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남한인권문제가 국제적으로 제기될 때 이들이 보이는 반응과는 180도 다른 것이다.) 반면 진보는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을 들어 대한민국이 기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북한문제를 중요한 이슈로 다뤄야 하는가 하는 문제 역시 양측의 대립이 명확한 부분이다. 우파는 북한인권문제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주요 업무영역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좌파는 이에 대해 반대한다.

얼핏 보면 양측이 적극적 개입과 소극적 방임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보이는 것 같지만, 실은 양측 다 자기모순을 가지고 있다. 이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우리는 과연 북한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불행히도 대한민국은 이 문제에 대해 모순된 관점을 가지고 있고, 많은 문제가 여기에서 기인한다.

대한민국헌법은 제3조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함으로써 북한정권의 존립근거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북한정권은 대한민국 영토 일부를 무력점거하고 있는 반란군, 혹은 반국가단체일 뿐이며 어떤 경우에도 합법적 정부일 수 없다. (4)

(4) 이는 4조의 평화통일 지향조항과도 부분적으로 모순되는 느낌을 준다. 반란군에 대한 무력진압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부분은 이 글에서는 더 검토하지 않는다

반면 현실의 세계에서는, 1991년 노태우정부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추진하여 성사시킴으로써, 위의 헌법조항은 물론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정부수립 당시의 유엔결의 내용조차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남북한 직접교류를 통해 남한은 북한을 실체적 존재로 계속 인정하였고, 현 정권에서도 6자회담의 추진 등, 북한을 사실상의 국가로 인정하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이런 모순적 입장이 북한인권문제와 어떻게 연결이 될까? 국가인권위원회의 경우, 만일 북한정권이 반국가단체라면 북한주민은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의 지위를 가지므로, 이들의 인권은 국가인권위원회의 큰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입장이라면, 북한을 독립국가로 전제하고 이루어지는 UN에서의 북한인권논의에 찬성은 커녕 참여해서도 안될 것이다. 북한인권문제가 자국 내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가간의 문제일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반대의 비판은 그대로 진보 쪽에도 적용된다. UN결의안에 남북관계를 특수성을 내세워 기권을 주장했다면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인권문제를 다루는 것을 반대하는 명분은 그만큼 약해지게 된다. (5)

(5) 물론 북한의 인권문제가 실제로는 심각하지 않다고 믿는다면 UN의 대북인권결의안과 국가인권위원회의 북한관련 활동, 두 가지 다를 모순 없이 반대할 수도 있는데, 공개적으로 그렇게 주장하는 측은 아직 보지 못했다.

결국 보수보편적 인권을 주장하면서도 그것을 북한에만 적용하는 자기 모순을 보이고 있고, 진보같은 민족을 강조하면서도 막상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정부차원의 실천에는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6)

(6) 이런 식의 자기모순은 북한을 무엇으로 보느냐와는 무관한 곳에서도 발견된다. 예를 들어 아프간 파병의 경우를 보자.

보수는 파병에 찬성하면서 국익을 들었다. 인권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세계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인권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북에 대해서만 강조하는 인권이 어떻게 진정성을 가질 수 있는가. 국익이 인권보다 중요하다면, 당연히 북한문제에 대한 접근에서도 국익이 인권보다 우선할 것이고, 과거 정부의 정책에 대해 인권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것은 모순이다. 만일 북한에 대해서도 국익의 관점에서 접근하자면, 북한주민의 인권이야 어찌되든, 남한의 평화를 보장하고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세계에서 오직 북한에만 적용되는 인권이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진보는 우리 군인의 생명과 아프간 민중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반대했지만, 결국 아프간을 그냥 놔두자는 것 외에는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아프간이 어쩌다가 현재의 위치에 처하게 되었는지 역사적 정의와 책임만을 고려하다가 결과적으로 탈레반에 의한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눈 감는 입장의 어디에 실효성 있는 인권보호의 고려가 있는지 의문이고 인권에 대한 국제적 연대책임의 정신과도 별로 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해결하도록 놔두는 것이 옳다면 한국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또 무슨 입장이란 말인가.

이상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북한인권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양측의 입장은 모두 내적 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상호 대화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보인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과연 북한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놓여있다. 비록 이 질문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을 얻는 것은 지난한 일이겠지만, 최소한 자기 주장의 내용들 만이라도 자기가 보는 북한관 위에서 논리적 일관성을 가지도록 다듬지 않고서는 어느 측의 주장도 대중적으로 논의가 되고 이해의 폭을 넓히게 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후안무치한 쪽이 자기 주제를 살피지 않고 북한인권을 확성기로 떠들어가며 이용해먹기 바쁘다면, 그 반대쪽은 상대적으로 조용해 보이는 것이랄까. 불행히도 진보는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하고 정리된 입장을 밝히지 못했고, 북한인권문제에 침묵했으며, 이렇게 보인 빈 틈에 진정성 없는 보수가 치고 들어올 기회를 주었다. 결국 진보의 이런 대응은 순수한 북한인권운동 보다는 체제전복을 염두에 두고, 북한주민의 인권보다는 남한 진보세력의 탄압에 중점을 두는 정치적 움직임이 북한인권운동을 참칭하는 결과를 낳았다.

재미있는 것은, 북한체제의 종식에서부터 시작해서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에 이르기까지 남한의 거의 모든 정치세력을 총망라하면서 서로 대립하고 있는 북한인권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이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에 대한 과도한 강조라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 북한을 같은 민족, 혹은 남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보지 않는 출발점이 바로 위에서 살펴본 내적 모순을 낳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7)

(7) 이와는 완전히 다른 출발점, 즉 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보는 입장은 아마도 좌파로 분류할 수 있는 쪽의 입장에 제일 가까운 듯 한데, 이들의 입장은 나름대로 내적 일관성을 갖추고 있으나 주요 논쟁의 무대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제 내 입장을 간략히 서술하고 끝내는 것이 옳겠다. 물론 나는 헌법학자도 아니고, 남북한문제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무슨 권위 있는 논의를 진행할 능력은 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생각하는 상식적 수준에서,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남북한 관계의 증진, 그리고 북한주민의 인권에 도움이 되는 입장에서 가지는 생각일 뿐이다.

나는 헌법의 조항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잠정적으로는, 북한정권이 한반도 일부 영토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정부라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8)

(8)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가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을 아주 부인하는 것도, 남북통일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기본적인 접근법에서 보편적인 국제관계의 틀에 기본을 두고 여기에 남북한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일 뿐이며, 그것조차도 잠정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남북분단으로 인한 모순이 무시할 수 없이 크기 때문에, 마땅히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통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과도하게 특수성에 집착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앞에서도 짚었듯이 남한정부 스스로가, 더군다나 소위 '좌파정권'도 아닌 노태우정권이 UN 동시가입을 주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한반도의 단일한 합법정부라는 기존의 입장을 포기한 것이고, 이후의 정권들에서 이어진 남북교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추인되어 왔으며, 심지어는 남북대결구도를 대북정책의 주된 방향으로 삼은 듯 보이는 현 정권조차 6자회담에의 참여는 물론, UN의 각종 회의에서 북한대표와 동석함으로써 이를 인정하고 있다. 정말로 북한이 반란세력에 불과하다면 결코 국가대표들이 참석하는 자리에 북한 대표와 함께 앉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9)

(9) 이것이 현재의 국제적 현실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북한을 대한민국 영토내의 불법단체로 본다면, 북미간 직접대화에는 무조건 반대해야 할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북미간 대화에 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한미 외교관계를 냉각시키는 위험을 각오하고라도 이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저항해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소위 우방국, 즉 일본이나 유럽 여러 나라와의 관계 역시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정치세력이 없다는 점에서, 헌법 3조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것은 이미 보수세력에게조차 구호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헌법 3조는 1991년 이래 사실상 (그리고 잠정적으로) 효력을 잃은 것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설사 북한정부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북한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상태를 인정한다면, 북한주민의 인권보장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 역시 남한이 아닌 북한정권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DO- if Art. 3 is no longer effective, how to solve the problem of citizenship (nationality) of North Koreans, particularly who defected to Korea.)

이런 시각에서 북한인권문제를 보는 나의 시각은, 보편적 인권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인권문제의 지적에 어떤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든, 이 부분은 포기 불가능한 최저선이며 북한이 일정 영역을 지배하는 정치적 실체로써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북한은 스스로의 인권상황을 국제적으로 공개하고, 국제적인 정부, 비정부기구들의 직접 접근 및 조사를 허용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제법적으로 자국 주민의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하고, 국제적 비판에 열린 마음으로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남한의 정부와 단체는 물론 지구상의 모든 정부와 국제단체, 그리고 시민들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북한정부에 압력을 넣을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

같은 시각에서, 북한인권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주요 이슈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넌센스이다. 남한정부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직접 책임질 수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인권문제를 다룰 정부기관은 통일부 혹은 외교부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남북한의 특수관계를 강조하면서 북한주민이 동포니까 남한 내의 모든 인권단체가 북한인권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주장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비록 과거의 역사로 인해, 남한이 북한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필요는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류의 보편적 인권이라는 관점 위에서만 유효하다. 더군다나 북한인권문제를 남한 내의 권력다툼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행위야말로 인권의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동이라고 판단한다.

한편 남한정부는 UN을 포함, 가능한 모든 상황에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이는 남북한 관계 이전에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써 당연히 져야 할 책임인 것이다. 물론 북한 외의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동일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또한 국가보안법은 물론이고 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등에서 남북한 간의 교류와 소통, 특히 인권문제에 대한 조사와 개선노력을 저해하는 일체의 조항을 폐지하는 것 역시 필요할 것이다. (10)

(10) 만일 남북한이 아직 전쟁상태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실질적인 북한인권운동을 저해하는 법률의 폐지가 불가능하고 주장하는 쪽이라면, 전쟁상태에 있는 국가와 국민이 상대편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과연 무슨 실효성이 있겠는지, 이런 상황에서의 인권문제제기는 단지 전쟁 상대방을 궁지에 몰기 위한 술수로 받아들여지지 않을지 역시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부디 이 문제에 대해 양측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서 대화 가능한 상태로 다듬어 대중 앞에 내어놓기를 기대한다. 그렇지 않다면, 양측은 계속 자기모순을 안고 갈 것이고, 앞으로도 북한인권문제는 계속해서 북한의 인권을 개선시키기 보다는 남한 내의 투쟁도구로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지금은 어느 쪽의 주장도 합리적 토론의 대상이 되기에는 한참 멀어 보인다.



북한인권, 왜 안하는데?
2012/06/13 22:06  고은태

앞의 글에서 북한인권을 대하는 기본적 시각을 논의했다면, 이번 글에서는 실제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북한인권문제, 특히 이를 공세적이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태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북한인권문제가 한국사회에서 문제가 된 것은 상당히 기형적인 방식을 통해서였다. 즉 북한인권 그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기보다는 일부 우익단체들이 기존의 시민단체들에 대해 북한인권에 침묵한다는 이유로 공세를 가하면서 이슈화되었다. 이명박정권에 들어서 더욱 노골화된 이런 공세는 정부와 여당의 호응으로 드디어 국가적 논쟁의 중심이 되고 말았다. 이 글에서는 이런 북한인권 공세가 실제로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북한인권 왜 안 해! / 하거든?

필자가 활동하는 인권단체에도 2009 5 20일 우익단체들이 사무실 앞에 와서 꽤나 살벌한 시위를 했다. 물론 북한인권에 대해 침묵한다는 비난도 당연히 빠지지 않았다. (1) 그러나 이들이 요구한 사항은 상당부분 해당 단체가 이미 해오던 것들이었다. 특히 요구사항 중 하나인 북한 강제수용소에 대한 즉각 조사의 경우, 이미 1994년에 상세한 조사 결과를 폭로해서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선일보마저 감탄해 마지 않았다.

국제사면위원회의 활동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루트를 통해 그런 정보를 입수했는지, 그것이 알고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정보 수집을 위해 막대한 국가예산을 쓰는 기관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정보기관 뿐만 아니라 유수국의 그 유명한 정보기관들에 대해서도 함께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조선일보, 1994. 8. 2.)

(1) 관련기사
경찰 멱살 잡는 폭력 시위대
동영상도 있으니 생생하게 볼 수 있다

1994년이라면 지금 북한인권 전매특허 낸 듯 행동하는 분들이 북한인권의 ''자도 꺼내기 전의 이야기다. 그러니 해당 단체 앞에서 북한인권에 침묵한다고 비난하는 시위를 하는 건 그야말로 적반하장인 셈이다. 우익단체들은 다른 단체 앞에서 북한인권 침묵한다고 시위를 하면서 그 단체가 북한인권에 대해 뭘 하는지는 아예 관심도 없었던 셈이다.

과연 이 우익단체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북한인권문제를 다루고 있노라고 설명했으면 격려는 고사하고, 고개라도 끄덕이고 돌아갔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이 우익단체들은 상대방이 북한인권에 대해 뭘 하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인권 왜 안 해! / 남이야!

우익단체들은 다른 시민단체들에게도 찾아갔고, 사실 요즘은 입만 열면 북한인권 왜 안 하느냐는 게 단골메뉴다. 그런데, 시민단체라는 게 뭔지 생각은 해봤는지 모르겠다. 시민단체란 시민들의 권익을 위해,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갖고 활동하기 위한 모임이다. 활동 분야는 단체의 목표에 따라 다른데, 내세운 목표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는 한, 무얼 안 한다고 비판 할 수 는 없다. 북한인권문제를 단체의 목표로 내걸지도 않은 단체에 대고 북한인권 안 한다고 비판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이건 마치 냉면집에 가서는 왜 짜장면을 안 하느냐. 같은 면인데 짜장면은 무시하는 거냐. 짜장면도 안 하면서 음식점 행세를 해도 되느냐 하면서 생떼를 부리는 상황과 같다. 짜장면이 먹고 싶으면 냉면집에 가서 내놓으라고 할게 아니라 중국집에 가면 된다. 냉면집은 냉면을 맛 없게 할 때 비판하면 된다. 그리고 정 마음에 드는 짜장면이 없다면, 자기가 직접 차려도 된다.

어떤 단체가 무료급식 현장에 나타나 북한에 굶어 죽어가는 동포가 얼마나 많은데 북한 무료급식은 왜 안 하느냐고 시위를 한다면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굶주리는 북한주민들은 제쳐놓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무료급식을 하는 것은 온 세계에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국가 경쟁력을 낮추어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몰아붙인다면 얼마나 어처구니없을 것인가? 우익단체들의 타 단체에 대한 시위와 압박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인권 왜 안 해! / 너는 하니?

그렇다면 북한인권을 입에 달고 사는 우익단체들, 과연 자기들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 뭔가 하고 있을까? 풍선 날리기 말고, 정말로 북한사람들의 인권에 긍정적이고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무언가를 하기는 하고 있을까?

다음은 2010 3 18,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있었던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보편적 정례검토 보고서 채택에 대한 기사 일부이다.

북한이 세부 항목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자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은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밝혔고, 휴먼라이츠워치(HRW)와 국제앰네스티 등 비정부기구(NGO) 등도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북한 정부의 구체적인 노력을 촉구했다.
한편 우리나라 인권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이사장 윤현)과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 15일부터 제네바 주재 각국 대표부를 대상으로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공동로비활동을 벌인데 이어 이날 비팃 문타폰 북한인권 특별보고관과 탈북여성 이명숙(가명)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개최했다. (연합뉴스 2010. 3. 19) (2)

유엔이사회의 보편적 정례검토, 해당국의 인권상황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자리로서 특정국가의 인권상황 개선에 관심이 있다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회이다. 그런데 입만 열면 북한인권을 부르짖던 단체들의 이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3)

(3) 인용한 기사에서 보듯이 북한인권단체 중에도 인권의 시각에서 북한문제를 보고 구체적인 활동을 열심히 전개하는 단체도 분명히 있다. 이 글은 이런 단체들을 비판하고 북한인권운동을 부정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실제로 북한인권활동을 하는 단체의 경우, 북한인권을 다루지 않는다며 다른 단체 앞에서 시위를 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보았다. 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일 만으로도 충분히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남들 비난이나 하러 쫓아다닐 필요도 못 느끼고 그럴 여력도 없는 듯하다.

혹시 다른 북한인권관련 활동은 하고 있을까? 풍선쇼 외의 다른 활동을 했다는 보도를 본 일이 없다. 상대가 북한인권에 관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관심도 없이 북한인권 안 한다고 생떼를 쓰는 분들이니, 본인들은 뭘 하는지 굳이 찾아봐드려야 할지는 좀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대표적인 단체의 웹사이트를 뒤져보았으나 안타깝게도 북한인권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이 단체는 입만 가지고 남들에게 감 놔라 대추 놔라 떠들고 다닌 셈인데, 물론 앞에서도 말했듯이 시민단체라는 게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니까, 남더러 이래라 저래라 시비나 거는 단체를 만드는 것도 자유일지는 모르지만, 정부기관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와 지적도 아니고, 자기들이 후원금도 한 푼 내 본 적 없는 남의 단체에 대한 훈장질이 주요 활동내용이라니 너무 난감하지 않은가.

정말로 북한인권상황의 개선을 원한다면 다른 시민단체 쫓아다니며 훈수나 할 시간에 직접 북한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간섭과 지적질을 꼭 활동에 넣고 싶다면 정부기관을 상대로 요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타 단체에 대한 시위로 점철된 북한인권 활동이란 북한인권에 대한 순수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비판,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등을 벌이는 시민단체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것,  결국 정치적 목적으로 북한인권을 이용한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 인권 왜 안 해! / 내가 해 봤는데…

지난 2009년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남측 직원이 북한당국에 의해 억류된 일이 있다. 이 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을 무렵, 나는 한 개인으로서 작은 일이라도 하기 위해 북한의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 앞으로 그 분의 인권보장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모든 일을 합법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통일부와 접촉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이런 북한인권활동이, 일반시민이 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결국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규정한 모든 절차를 거쳐 합법적으로 편지를 보내기는 했지만, 두 번 다시 시도할 만한 엄두는 나지 않는다통일부는, 친절하기는 했지만, 별로 내켜 하지 않았고, 그래서 상당히 힘들게 신고의 수리를 받아내야 했다. 게다가 이 신고는 단체 명의로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서신을 보내는 모든 사람이 개인적으로 절차를 밟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남북한 간에 직접 서신왕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제3국에서 누군가가 대신 서신을 부쳐주어야 하고 그 사람 역시 같은 신고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이런 내용의 신고를 한 사람이 내가 처음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통일부에서도 해당 신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꽤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아무도 북한당국이나 북한주민과의 접촉을 통해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었거나, 합법적 과정을 밟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심지어 양쪽 정상들이 직접 추진하는 남북접촉조차도 기존 법률, 특히 국가보안법 저촉이 문제되어 '통치행위'라는 우스꽝스러운 논리로 정당화되어야 했으니, 합법성의 문제는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남한주민의 억류를 풀어달라는 편지 한 장을 보내기가 이토록 까다로운데,  현실적으로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국민이 북한의 인권실태를 본격적으로 조사하고, 북한정부에 북한주민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압력을 넣을 합법적인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설사 모든 법적 절차를 거쳐서 합법적으로 북한인권활동을 진행한다고 해도, 그게 어느 순간에 국가보안법 위반 조직사건으로 만들어질지 모른다는 것이, 현재 국가기관의 국가보안법의 남용을 바라보는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북한인권문제에 민간이 개입하는 것은 북측뿐 아니라 남측의 문제 때문에도 아직은 위험천만한 것이다.

과연 지금 중국 등지에서 탈북자들을 위해 전개되고 있는 일부 단체의 북한인권관련 활동은 현행법상의 모든 절차를 합법적으로 거친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결과적으로 북한인권문제는 정권의 지지를 받고 묵시적 허용이 이루어진 단체 혹은 개인만이 전개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저런 사정을 감안할 때, 우익단체들이 북한인권을 위해 우선 해야 할 일은 실질적인 북한인권운동이 가능하도록 현재의 법적 제도적 제한을 풀도록, 그리고 국가보안법이 악용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시민들에게 심어주도록 정부를 압박하는 일이다.

북한인권 논쟁 바라보기

애초에 북한인권에 대한 우익단체의 문제제기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어이없는 코미디에 가까웠기 때문에, 진보진영이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보수정치권 역시 이런 측면을 알기에 처음에는 이런 움직임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던 것이 현 정권 들어와서 국가인권위가 북한인권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루고,  북한인권법이 제출되고,  국제무대에서 북한인권을 압박하면서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글을 통해 이야기 했듯이, 적어도 우익단체들이 주장하는 북한인권은 진정한 의미의 인권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저 자신들의 마음에 안 드는 주장을 재갈물리 기 위해 북한주민의 인권을 이용하는 텅 빈 구호일 뿐이다. 그저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자 인권 그 자체에 대한 위협일 뿐이다. 인권을 위협하기 위해 인권을 내세운다는 것, 얼마나 자가당착인가. 그런데 그런 주장이 이제 사회적인 의제가 되고 말았다.

히틀러의 나치당이 초기에 세력을 확장하려 애쓰던 시기, 이들은 다른 주장을 펼치는 정치조직, 주로 좌파 정치조직의 활동을 방해하는 것을 주된 활동내용의 하나로 채택했다. 다른 조직의 모임에 대거 몰려가서 집회 중에 맥주잔을 집어 던지는 행패를 통해 집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이 나치당의 주요 활동 중 하나였다.

어처구니 없는 이런 행동을 통해, 나치당은 스스로의 존재를 -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 대중들에게 부각시켰고, 침묵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런 행동의 유용성을 인정하는 힘있는 우익집단에게 자신의 존재의의를 각인시켰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대해 진지하게 대응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던 지식인들은 이후 나치가 정권을 잡을 정도로 성장하고 인류에 대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경악하며 지켜보아야 했다.

현재 남한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나치의 맥주잔을 떠올리는 나의 연상작용이 무리한 것이기를 빈다. 그러나 맥주잔이든 목검이든 가스통이든, 다른 이들의 의사표현의 자유를 압박하기 위한 방해행위와 시위들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무서운 흉기이다. 더구나 인권을 들이대고 인권을 파괴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간의 해프닝들이 어떤 무서운 것의 탄생을 알리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진다.



북한인권, 어쩌면 좋을까?
http://blog.ohmynews.com/litmus/177656
2012/06/17 13:00 고은태

앞의 두 글에 이어 이번 글은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북한인권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생각해보는 글이다.

미리 전제할 것은 나는 어떤 의미에서도 남북관계 전문가나 국제정치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저 인권에 관심이 많은 일반시민이 상식수준에서 쓴 글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좋겠다.

또 다른 전제는, 이 글이 남북한관계 혹은 통일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는 글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로지 북한인권문제를 현 시점에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그것도 본질적인 해결책보다는 실질적으로 작은 개선이라도 이루려면 어떤 접근법을 채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글이라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해답이 궁금하시다면, 다른 분들의 글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전쟁터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는 위생병에게 전쟁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올 방법이나, 전투시의 사상자 발생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나는 당장 눈 앞의 인권침해를 조금이라도 막고, 조금씩이라도 인권상황을 개선시킬 방법을 고민하는 자세에서 이 글을 썼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나, 그건 다른 사람의 몫이다. 게다가 기본적인 조건들이 변화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해결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란과 이라크가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이야기다. 두 나라는 유엔에서 각기 상대국의 인권상황을 고발한 인권단체의 보고서를 들고나와 상대의 인권침해를 비난했다. 물론 자기 나라에 대한 같은 단체의 보고서는 진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이 코미디 같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렇게나 인권을 떠든다고 해서 그게 인권에 도움이 되지도 않고, 인권을 말하는 사람이 인권을 존중하고 있다는 홍보효과도 없다는 것이다. 이 코미디는 두 나라가 모두 인권을 존중하지 않으며, 인권을 상대방을 비난하는 선전도구로 전락시킬 만큼 인권의식이 천박하다는 사실만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대외관계에서 인권을 이야기할 때 가장 큰 핵심은, 그것이 평화에 대한 지향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은 그 헌장의 전문을 전쟁과 인권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함으로써, 유엔의 목적이 평화와 인권을 지키는 것이며, 이 두 가지가 분리할 수없는 밀접한 관계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그대로 현대의 국제관계의 원칙이기도 하다. 따라서 군사적 긴장관계를 고조시키면서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허구일 수밖에 없다. (1)

(1)
UN헌장의 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연합국 국민들은
  ·우리 일생중에 두 번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인류에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고,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 및 가치, 남녀 및 대소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며

부시가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인권침해를 비난하며 침략을 을러대고 있을 때, 전세계의 여론은 부시의 인권에 대한 언급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담 후세인이 부시의 위협에 그 상황에서 인권침해를 중지할 가능성도 없었다. 결국 부시는 인권의 이름을 더럽혔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반인권적인 정치인임을 폭로했을 뿐이다.

현 정권은 김일성 사후의 김영삼 정부이래 가장 대결적인 구도로 북한을 대하고 있고, 이에 따라 남북의 긴장관계도 가장 고조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대해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북측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아니 당장 북한에 인권문제를 제기할 통로나 유지하고 있는가? 내용 없는 공허한 인권논의는 민간단체도 아니고 책임 있는 정부가 하기엔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2)

(2)
물론 특정 국가내의 인권침해를 중지시키는 유일한 해결책이 무력사용일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나로서는 도저히 동의하기 어렵지만, 북한체제붕괴를 주장하는 분들의 신념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적어도 최후의 순간에나 나와야 할 일이다. 체제붕괴를 수십 년 동안 주장만하고 있으면, 해당 체제에 신음하는 주민들은 그냥 방치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런 식이라면 인권주장은 정치적 선동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힘들다. 그러니 그냥 인권이라는 단어는 빼고, 체제붕괴를 주장하시는 것이 좋겠다. 아니면 단시간 내에 체제를 붕괴시킬 구체적인 계획안을 내놓으시든지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 중 가장 북한의 지배세력에게 위협적이었던 것은 김대중정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햇볕정책이 얼마나 북의 입장에서 불편한 것이었으면, 북한 중앙통신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북한은 12일 국민의 정부가 추진중인 햇볕정책에 대해 "본질적으로 반북대결정책"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이날 "햇볕정책이란 남조선의 썩어빠진 반인민적 식민지 제도를 우리 공화국 북반부에로 연장하겠다는 검은 속심을 `햇볕'이니, `포용'이니 하는 낱말로 포장한 것으로서 본질에 있어서 반북대결정책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중앙통신은 햇볕정책.포용정책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 누구를 얕보고 옷을 벗기자는 심히 모독적이고 도전적인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명백 히 우리의 자주권에 대한 침해행위"라고 비난했다.

통신은 또 사회주의제도를 변질시키려는 햇볕정책과 그것을 끝까지 지키려는 북한의 의지가 서로 부딪치는 경우 나올 것은 대결밖에 없다면서 남한정부는 햇볕정책이 한반도에서 대결과 전쟁을 초래하는 온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1999. 6. 13)

북한정권은 남측의 포용정책이 자신들의 독재체제에 어떤 위협이 되는지 정확히 알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측은 이 포용정책에 끌려나올 수밖에 없었고, 불과 일 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에 응하고 6.15공동선언을 발표하게 된다. 정상적인 시각으로 볼 때 북한정권이 아무리 불합리하고 미친 것처럼 행동하더라도, 그 쪽도 나름의 계산은 있는 것이고, 국제사회에서 명분이란 꽤 큰 힘을 가지기도 하는 것이다.

대외정책에서 상대방의 인권을 거론하는 행위란 본질적으로 상대 측 영토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주민들의 인권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상대국 정부이다. 평화를 위협하고 긴장도를 높여가는 정책을 쓰면서 동시에 인권을 거론하는 것이, 명분상으로도 의미가 없고 현실적인 효과도 없는 것은 분명하다.

역사를 돌이켜 보자면, 심각했던 냉전상황을 접고, 서구사회가 동구권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고 조금씩이나마 개선되게 할 수 있었던 계기가 1975년의 헬싱키조약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동등한 주권을 존중하고 무력사용과 위협을 중단함으로써 평화를 약속한 이 조약은 동시에 기본적 자유와 인권존중이라는 합의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조약에 의해 상호공존의 길이 열림으로써 비로소 동구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인권논의가 활발해 질 수 있었던 것이다. (3)

(3)
헬싱키조약의 내용 (위키피디아)   
-동등한 주권 인정
-무력 사용과 위협 중단
-영토 불가침
-영토 보전
-분쟁의 평화적 해결
-내정 불간섭
-사상, 양심, 종교, 신앙 등 기본적 자유와 인권 존중
-인간의 평등과 자결권 보장
-국가간 협력
-국제법상의 의무 이행


반드시 북한체제를 붕괴시켜야겠다는 분들은 이 조약이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가져온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 역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입으로만 북한인권을 외칠게 아니라, 실제로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해서 평화로 가는 길을 걷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이 싫어도 대화의 장으로 끌려나올 수 밖에 없도록 압박하는 것이 정부가 취해야 할 가장 좋은 선택이다. 그 기반 위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어떤 식으로든 작은 돌파구들을 열어가는 것 외에는, 그다지 현실적인 북한인권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 북한의 인권상황 중 가장 심각한 것 하나가 바로 식량권이라는 점도 지적해야 하겠다. 굶고 있는 사람들을 먹이는 것, 여기에 무심하면서 북한인권을 논의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가. 지금 같은 대결국면에서 북한인권을 떠드는 것은 결국 북한주민의 삶은 더 힘들어지고, 북한정권의 입지는 오히려 강화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 반대급부로 남한의 강경세력의 입지 역시 강화되겠지만, 그게 그냥 정치놀음이지 도대체 인권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렇다면 긴장완화와 교류협력, 신뢰구축을 기본바탕으로 하는 정부차원에서의 북한인권 실천은 어떤 것들이 가능할까?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인권문제를 다룰 때만은 남과 북이 서로 다른 나라라는 태도를 가지고 냉정하게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과도한 민족감정이나 통일열망은 대개의 경우 상황을 왜곡시키고 보편인권이라는 개념을 질식시키기 때문이다. (4)

(4)
다시 말하지만, 이 개별국가라는 태도는 어디까지나 인권논의를 위해, 그리고 잠정적인 것이라는 점을 거듭 밝힌다. 그 외의 남북관계에서의 특수관계나 통일을 위한 노력에서까지 그러자는 것도, 영원히 개별국가로 가자는 것도 아니며 단지 이런 태도가 보다 효과적인 인권'외교'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국제적으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기에 가장 좋은 무대는 UN, 그 중에서도 제네바의 UN인권이사회이다. 이곳을 무대로 당당하고 냉철하게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는 것이 아마 가장 좋은 방식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남한의 인권문제가 같은 무대에서 제기될 때에도, 일단 선방하겠다는 자세로 공무원들을 대거 파견해서 변명에 급급하기 보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이런 국제적인 인권질서의 틀을 이용함과 동시에, 남북한 직접접촉에서도 끊임없이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필요하다. 차근차근 열린 자세로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진지하게 개선을 모색하다 보면 언젠가는 남북한이 서로의 인권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룰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남한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북한이 인권에 관한 정보를 국제사회 앞에 투명하게 공개할 것과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UN 혹은 국제인권단체의 조사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정보를 틀어막고 있는 것은 인권에 대한 논의가 진전될 싹을 자르는 것이고, 국제사회에서 인권에 관해 북한이 가진 최소한의 책임조차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보가 유통되면 그 후에 다른 문제들도 진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기서 보수와 진보는 기존의 태도를 좀 바꿀 필요가 있다.

보수의 경우, 인권문제를 마치 우리가 북한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무기라도 되는 듯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엔에서 남한 인권문제가 다루어질 때 알 수 있듯이, 남한 역시 많은 인권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북한은 물론 미국과 같은 우방까지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간에 인권문제를 다루는 것은 일방적인 정치공세가 아니라 상호적이어야 한다. 남한의 국가보안법에 대한 논의를 거부하면서 북한의 인권을 다루자고 할 방법은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남북간의 인권논의는 어디까지나 마음을 열고 양자의 인권문제를 공히 다루고 서로 개선을 위해 협력하자는 자세여야 할 것이다. 인권을 가지고 누가 더 나으니 못하니 따지는 것은 정말로 부질없는 유치한 짓이다.

진보의 경우, 북한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 남북관계에 부담이 된다는 일부의 사고는 좀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심지어 외교적 결례라느니, 내정간섭이라느니 하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은 과연 이 땅의 일부 진보에게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있는지 의심하게 하는 부분이다.

스스로를 국가라고 주장하는 지구상의 모든 정치권력은 당연히 인권보호의 의무를 지고 있으며, 이를 국제사회에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권력이 미치는 영역 내의 인권문제에 관해 다른 국가 혹은 세계의 시민들이 지적하는 바를 경청해야 할 의무가 있다. 더군다나 북한은 남한보다 무려 9년이나 빠른 1981년에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인권협약에 가입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인권보장에 대한 스스로의 의무를 인정하고,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적 공동책임, 즉 국가간에 서로의 인권문제를 제기할 권리에 대해 인정한 바가 있지 않은가. (물론 1997년에 이 협약에서 빠져나가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한 사실이 있기는 하지만) 또한 북한 역시 UN인권이사회의 보편적 정례검토에서 남한인권상황을 비판한 바 있으니, 스스로에 대한 비판을 거부할 아무런 명분도 없는 것이다.

이를 무시하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며 인권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사실 북한을 정치적 금치산자나 유아 취급을 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반북멸공세력이 아닌가 싶다. 적어도 21세기의 국제무대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주장하려면 북한은 인권문제에 대한 논의에 의젓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고, 남측 진보진영 역시 북한이 인권에 대한 대화에 이성적으로 임할 수 있는 존재라고, 혹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고 가정하고 북한인권문제를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문제를 다루는 것은 좀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하고 긴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국가인권위 자체가 정부의 인권침해에 대항해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 위한 존재라는 것만 지적하자. 북한인권을 한국정부가 무시하고 있고, 그래서 국가인권위가 본격적으로 나서서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하는가? 아니면 북한정부도 대한민국 정부의 일부라서 국가인권위가 감시해야 하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말이 되지 않는다.  통일부나 외교부에서 다루면 충분할 일이고, 이 일에 국가인권위가 나서는 것은 의도적으로 북측을 자극하겠다는 것 외에는 별 의미가 없다.

또한 별 실효성 없이 북한을 자극하기만 하는 북한인권법에 대해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인권법이 북한인권개선에 그리도 중요한 법이라면, 왜 새누리당이 지배하다시피 한 18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않았는가. 한미FTA를 비롯해서, 야당이 결사 반대하는 법안들은 잘도 통과시킨 여당이 북한인권법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스스로도 이 법안이 정치선전의 의미 외에는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적어도 제대로 된 북한인권법을 만들고자 한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북한인권상황을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로드맵을 먼저 공개하고 이에 기반하여 가장 핵심적인 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현 정부 들어 크게 후퇴했다고 국내외에서 공히 비판 받고 있는 남한의 인권상황도 좀 개선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남한정부가 이야기하는 북한인권이 인권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공염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탈북자의 인권문제는 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탈북자문제가 북한인권문제라고 착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 남한에 와있는 탈북자의 문제는 실은 남한인권문제이고, 중국에서 강제송환의 위기에 처해있는 탈북자의 문제는 중국인권문제인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의 배경에 북한인권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해당 탈북자들을 국제적 인권기준에 맞게 대우하고 그들의 존엄성이 존중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현재 그 탈북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국가의 책임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한에 와있는 탈북자들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는 삶을 제공하는 것은 남한정부의 책임이다. 그리고 이들 탈북자의 인권은 남한사회가 소수자, 즉 이주노동자나 이민자 등, 자신보다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때로는 지나치게 잔인한 태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훗날 통일이, 한반도에 이천만 가까운 이등 시민을 만들고, 이들을 주류가 착취하는 상황을 낳지 않게 하려면, 지금 남한에 들어와 있는 탈북자들을 비롯해 다양한 소수자, 특히 다른 문화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도록 사회 전반의 인권의식을 높이고,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을 펴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인권문제에 지름길은 없다. 보편적 인권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동시에 상대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함께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가장 원론적인 이 방법이 가장 빠른 길이다

= = = = = = = ==

psycp

글 잘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네요. 일부 극우단체나 주사파들이 이 글을 읽고 뭐라고반박할지 궁금합니다.

일반시민이 처음 북한 인권문제를 듣고 할 수 있는 일은 김정은 체제를 비난하고, 우리 정부에 어떻게든 해결을 촉구하는 것, 그리고 대북 전단지를 살포하는 등 직접적인 행동을 하는것 정도일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하는것은 좋은데, 문제는 이 사안이 다른 사안을 덮어버리고  마치 대북문제에 참여하는 유일한 방식으로 생각되어지는 현상이죠. 민간차원에서 시민들이 북한 인권문제의 실태를 듣고'충격'먹어서 위와 같은 일들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식은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단지 '나는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야. 특히 북한 사람은 우리 동포잖아? 빨리 김정은 통치에서 벗어나 그들이 자유를 찾았으면 좋겠어! 근데 니들은 왜 집회참가 안하냐? 인권 문제에 관심 없거나, 아니면 김정은 체제를 옹호하는거구나! 이런 빨갱이들! 난 자유주의의 수호자야!!' 정도의 자기 위로와 만족을 위한 행위일 뿐 어떤실질적 효과도 거두기 힘들다는것입니다.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이상 '누가 누가 더 관심있나'의 대결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단발성으로 말로만 치고 빠지는 행태를 보이는 정치인, 지식인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가령, '북한 인권법'이라는 법안을 만든다고 했을 때, 그 법안의 내용은 '우리 당에서는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상징적이고 선언적인내용이나, 앞 글에서말한 '시민들이,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에 충격먹어서 하는, 민간차원의 행위'를지원해 줌으로써 그들의 표를 구걸하는 방식이어서는 안됩니다.

적어도 정당이나 정부차원에서 이 문제를 대할때는 민간에서 하는 대북활동과는 차별되는 실질적 효과를기대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기껏 내놓은 정책이라는게 민간 단체 지원이라니...대북 문제에 정부는 손놓고 민간에게 맡기겠다는것과 다름 없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하여 조금 더 원론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를 낼 수는 없겠지만 장기적인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플랜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끊어진 북한과의 대화채널을 복구하고, 북한 정권과의 대화를 진행해 가면서 한편으로 식량에 대한 지원을 가지고 외교적으로 협상하며 국제사회의 감시 속으로 그들을 끌어 와야합니다. 국제 사회와 동떨어진 그들은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내부 단속을 강화할 뿐이죠. 북한 인권문제는 그들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끌오고 난 후에 공론화시켜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장기적인 플랜의 마련을 위해서는 좀 더 많은 토론의 장이 필요할 것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간과 정부의 해결방식에 문제점들과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한 심도있는 의견들이 제시 되어야 합니다. '충격'으로 인한 단발성 집회와 해결책들은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우리 생각들을 정교화시키고 보편적인 합의점을 만들어 구체적 플랜을 제시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