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로 돌아간 배현진, 백지연·손석희에게 배워라
[명박근 칼럼] 언론인과 앵무새의 촘촘한 경계, 미디어평론가 명박근 | media@mediatoday.co.kr , 2012-05-15
미디어오늘은 미디어평론가 명박근의 온라인 칼럼을 연재합니다.
이 칼럼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와 언론의 ‘속내’를 들춰내고 도발적인 ‘촌평’도 시도할 예정입니다. 필자 요청으로 필명 ‘명박근’을 사용하게 된 점 양해 바랍니다. / 편집자 주
배현진 아나운서가 파업을 철회한 다음 업무에 복귀했다.
언론 보도와 주변 아나운서의 트위터 내용을 종합하자면, 본인은 ‘뉴스데스크’ 앵커직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회사 고위층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했을까. 파업 투쟁에 소극적이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어정쩡한 스탠스’를 ‘틈새’로 여긴 사측이 ‘앵커
계속 시켜줄 의향이 있다’면서도 ‘만약 파업을 지속하면 (사실상 대체인력으로 선발한) 전문앵커가 네 자리의 주인이 될 수 있다’며 회유 및 협박을 행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본인의 행보에 명분을 실으려 “진실과 사실의 촘촘한 경계”라는 수사를 아끼지 않은
모양이다. “신의 계시” ‘드립’ 보다야 훨씬 격조 있지만,
중요한 것은 본심. 동료 조합원이나 시청자는 어리석지 않다. 도처에서 그 속을 다 읽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인의 꽃이라는 앵커 자리를 입사 수년 만에 꿰찬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정서, 이해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돌아갈 기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최대한 지켜, 할 만큼 하고자 하는 뜻, 이 또한 인지상정의 범주 안이다. 그래서 이런 고민이 있었던 것 아닌가. ‘선배들과 의리를 지키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파업에 어렵게 얻은 자리마저 걸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녀는 장고 끝에 결론을 내린다.
그때와 지금을 획일적으로 대조 비교할 수는 없으나 두 사람의 사례를 소개하고 자한다.
문화방송 최초의 메인뉴스 앵커 백지연은 1992년 9월 파업 당시 그 자리를 박탈당한다. 사측은 이를 노조 가입 요건이 안 됐던 신입 아나운서에게
맡긴다. 추정컨대, 교체를 앞두고 사측은 여러 가지 방식의 압박을 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백 앵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어떻게 됐을까. 1993년 4월 보란 듯이 복귀했다. 또 한 번 위기가 닥치면
보신(保身)할 법도 찾을 텐데
1996년 3월 파업에 다시 참여해 또 화면에서 빠졌다. 하지만 재차 컴백했다. 국민이 백지연을 잊지 않은 탓이다. 그런 백 앵커는 MBC를 떠났지만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방송인으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전 MBC 아나운서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는 어떤가. 손 교수는 문화방송에 입사하고 3년 만에 뉴스데스크 앵커(주말)를 맡았다.
예나 지금이나 남성 앵커는 중견 기자의 몫이다. (1970년 10월 5일부터 편성된 ‘뉴스데스크’의 초대 앵커는 당시 보도국장 박근숙 씨였다.
지금도 그 자리에는 보도본부장인 권재홍이 착석하고 있다.) 수려한 외모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그만큼 출중한 뉴스 진행 역량을 인정받은 셈이다.
일찌감치 출세가도에 오른 손 교수지만 그는
1992년 10월 MBC 파업 때에 노동조합
쟁의대책위원을 맡아 사측과 싸운다. 당시 조합원들은 상징적 투사 손 교수가 구속되면 손실이 크다며 경찰이
투입될 당시 그를 포대에 넣어 숨기는 등 보호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본인은 이렇게 숨는 것이 정당하지
못하다 판단했던지 직접 구인에 응했다. 손 교수는 그렇게 구속된다. 파란 수의를 입고 수갑 찬 모습의 사진도 이때 나왔다.
이 사진 한 장은 손석희 인생을
180도 바꾼다. 일개 아나운서, 진행자에서
국민 언론인으로 거듭나게 한 힘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공정방송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줄 아는 기개 있는 언론인’ 그것은 지금껏 한국의 핵심 오피니언 리더로서 그의 위상이 공고한 이유기도 하다.
(물론 당시 손석희 백지연 두 아나운서만 투쟁한 것은 아니다. 당시 성경환,
변창립, 김은주, 정혜정 등 아나운서의 족적도
선연하다.)
나는 배현진이 ‘그럴듯한 혼처를 얻기 위해 몸값 높은 앵커직에 연연했다’는 식의
마타도어를 믿지 않는다. 불의를 보면 맞설 줄 아는 지성, 그 지성의 값을 뺀 앵커란 존재의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또 아나운서
지망생이었을 때 손석희, 백지연의 길을 목도하지 않았을 리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해 못 할 노릇이다.
아나운서는 앵무새가 아니다.
물론 앵무새였던 때도 있었다. 총을 든 군사 쿠데타 세력이 겁박한다고 혁명 공약문을
검토 없이 읽어 내려간 시절이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파업에 참여하는 MBC 아나운서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공정방송을 외치고 있다. 이들 아나운서 또한 언론인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파업 동지를 뒤로 하고 일개 직원으로 돌아간 배현진 그리고 최대현,
양승은 등 신(神)의 이행자에게 말한다. 당신들이 방송에서 하는 뉴스는 못 믿겠다고. 반드시 당신들이 거짓말해서가 아니다. 당신들이 읽는 원고를 써주는 주체가 부패 정권 그리고
배임 혐의자와 결탁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돌려 이야기해 미안하다. 당신들이
앵무새와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