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16
[세상 읽기]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법 / 김동춘
유력 주자에게 구애하는 일이나 폭로성 사건 한두건에 매달리면 야권은 패배의 길로 가기 쉽다
‘오너정당’의 발걸음은 빠른데, 야당은 아직 내부 진통 중이다. 내부의 잘못을 너무 심하게 타박하면 상처만 깊게 할 가능성이
크다. 빨리 수습하고 지도부를 꾸려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범여권과 야권의 정당지지율은 엇비슷하게 나온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대선에서도 거의 그대로 간다고 본다면, 결국 이번에 투표하지 않은
46%의 유권자를 끌어내는 쪽이 승리할 것이다. 민주통합당으로서는 야당 지지 가능성이
높은 청년들을 움직이는 것이 대선 승리의 관건이 될 것이다. 정책선거가 실종되고 선거판이 흑색선전,
색깔시비, 진흙탕으로 변하면 청년들이 등을 돌릴 것이다. 여당은 승리를 위해 할 수만 있다면 이러한 수단을 계속 사용할 것이고, 주류 언론은 이번에
김용민의 8년 전 막말을 민간인 사찰 등 현재의 심각한 정권 범죄보다 더 위험한 사건으로 만들어버렸듯이 대선에서도
국민 홀리기를 계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은 애초부터 ‘정권 심판론’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보수세력의 구조적 힘을 과소평가하고,
그것을 상쇄시킬 수 있는 과감한 대안과 인물을 국민들에게 제시하지 못한 야권 자체에 근원적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기업, 관료,
사법, 언론, 학계 등 국가 주요 집단의
8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막강한 여당에 맞서기 위해서는 빈곤과 불안에 신음하는 하위 80%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 가슴에 불을 댕기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대선 승리에 조바심이
나서 유력 주자에게 구애하는 일에 당의 운명을 걸거나, 지난 대선 때 야당이 비비케이(BBK)에 기대했듯이 폭로성 사건 한두건에 매달리면 패배의 길로 가기 쉽다.
현재 야권의 가장 큰 자산과 동력은 140명의 의원들이다. 비례대표로 당선된 의원들이 각기 적어도 3개 이상의 입법 의제를 국회 개원 시점에 공개적으로 제시하여 자신의 정책이 현 정부·여당의 정책과 어떻게 다른지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100여명의 지역구 의원들과 낙선한 후보들이 지역을 순회하여 선거운동 당시보다 더 열심히 민의를 수렴하여 전국적인 보고대회를
열고 현장의 목소리를 기초로 국가의 발전전략을 제시한다면, 선거 지형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야권의 대선 주자들이 빨리 나타나 각자의 정책과 비전을 내놓으면서 경쟁에 돌입하면 상당한 흥행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영호남 모두에서 지역주의가 후퇴하는 조짐을 보여준 점은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그래서 중소기업가·자영업자·노동자·청년의 불안과 고통을 묶어내는 계층별 맞춤 전략이 더 중요해질 것 같다.
영남·충청·강원 등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의 가난한 주민들이 ‘운동 정치’의 비판에
환호하기보다는 ‘구린 점이 있지만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또다시 기웃거린 것은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재벌개혁 등 야당의 대안이 그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지방에서 고군분투하는 야권 인사들은 구한말의 만인소(萬人疏)와 같은 것을 조직해서 지방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
지난 시절 대선 결과를 보면 민주화, 남북화해, 경제 등 시대정신이 나름대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오늘의 시점에는 양극화 해소, 사회
전반의 공정과 공평의 실현, 복지, 평화통일이 바로 이 시대의 정신이다. 여권은 비전을 제기하지 않고도 기본은 깔고 들어가지만,
야권은 통 큰 비전을 제시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정신은 야권의 편이니 너무 주눅들 필요가 없다. 야권은 지방과 서울에서 시끌벅적한
만민공동회를 열어서 소외된 사람들이 소리치게 해야 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