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차인표 팬”…차인표 “작가로 불려졌으면”
두 번째 장편소설 출간 인터뷰…“지나쳤던 IMF 실직자, 탤런트 자살에 미안해 집필”
최훈길 기자 | chamnamu@mediatoday.co.kr 2011-06-18
차인표(45)만큼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배우도 드물 것이다. 그만큼 지난 1993년 방송에 데뷔한 이래 그는 숫한 화제를 몰고 왔다. 최근에는 두 번째 장편 소설 <오늘예보>를 출간해 작가로서도 입지를 다지고 있다.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는 “연기를 통해서 동시대인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의 문제를 보다 좀 깊이 공유하기 위해서 글쓰기를 시작한 작가 차인표”라고 그를 소개했다. 18일 차인표와 손석희 교수가 처음으로 만났다.
차인표씨는 이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10여년 전 IMF와 동료 탤런트의 자살 사건이 계기가 된 <오늘예보>의 출간 배경, 두 명의 딸 입양기, 해운회사 영업사원을 그만두고 탤런트에 도전하게 된 계기 등 자신의 삶에 대해 약 40분간 털어놓았다.
그동안 타프로그램 출연 제의를 고사해 온 차씨가 유독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출연을 고집해 온 것은 방송 시작부터 눈길을 끌었다. 그는 “평소에 손석희 선생님이 예전에 <백분토론> 진행하실 때 한 번도 안 빼놓고 열심히 봤다”며 “중간에서 여러 의견들을 조율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어요. 그래서 (시선집중에도) 출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이날 인터뷰의 계기가 된 배우 차인표씨의 두 번째 소설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우선, 손 교수가 ‘배우 차인표로 불러드릴까요? 작가 차인표로 불러드릴까요?’라고 묻자, 차씨는 “앞으로 먼 미래에 저는 작가로 불려졌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는 배우가 제 주업인 것 같다”고 밝힐 정도로, 소설 집필에 대한 열망이 컸다.
이번에 출간한 소설이 지난 1998년에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를 촬영하면서 겪은 일로부터 비롯된 것일 정도로, 차씨는 오랜 기간 이 작품을 준비해 왔다. 이번 소설은 삶의 막다른 골목까지 몰린 세 남자의 삶과 희망에 대해 다룬 작품으로 현재 2판 인쇄까지 3만 3000부가 발행됐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묵혔다가 세상에 내놓은 얘기가 금방 이렇게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좀 허무했다”고 밝힐 정도로, 출간한 책에 대한 애정도 커보였다.
그는 IMF 사태로 직장인들이 일터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던 그 시절에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까지 갔다 오면서 (한강 둔치에서)그렇게 울고 있거나 물끄러미 있거나 힘없이 한숨짓고 있는 많은 남자들을 봤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내가 왜 자전거 탄다고 그걸 그냥 지나쳤을까 그런 모습들을’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쭉 살면서 매일매일 순간순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그냥 스쳐지나 보내고 있었다”며 “그런 분들한테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이 소설을 쓰게 된 또 다른 계기는 동료 탤런트의 죽음이었다. 차씨는 지난 2008년 작품 집필 중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 얼마 전 만난 동료 후배 탤런트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됐다. 이후 그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것은 일회성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고통 중에 있더라도 그것을 참고 견디고 끝까지 살아냈을 때 얼마나 커다란 연속성으로 가는 것인지, 사람들한테 좀 설득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딸을 입양한 것에도 손 교수의 질문이 이어졌다. 손 교수가 “입양을 결정하기까지 좀 걱정도 많이 하셨죠?”라고 묻자, 차씨는 연애할 때부터 “‘입양해서 우리 식구들을 더 만들어 사랑을 더 나눠줄 여유가 되면 그렇게 하자’고 그랬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장녀(7), 차녀(5)에게 “처음부터 (입양 사실을)알려줬다”며 “안 알려준다는 건 거짓말을 하는 거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내 딸한테 뭔가를 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딸들에게 “‘엄마 아빠는 네가 우리 집에 왔던 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날이다, 하나님이 너를 보내주신 날이 제일 기쁜 날’이라고 알려줬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가 “(입양아가)사춘기 때나 조금 자아가 좀 더 눈 뜰 때 혹시 조금 더 힘들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묻자, 차씨는 입양아가 친부모와 양부모간 고민도 있겠지만 “결국은 세상에 모든 난관을 풀어 가는데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무한한 사랑이고 (우리가 아이에게)사랑을 많이 줌으로 해서 아이가 아픔을 최대한 덜 겪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90년대 당시 잘 나가는 해운회사의 상속자이자 해운회사 뉴욕지점에서 일했던 차씨가 이를 박차고 귀국해 탤런트에 도전한 사연도 눈길을 끌었다. 차씨는 당시 신학대학 강사였던 어머니의 이 한마디가 인생 진로를 바꿨다고 설명했다.
“인표야, 너 지금 네가 깨닫는지 모르겠는데 너의 모든 대화의 중심에 돈이 있다. 누구는 얼마 벌고 누구는연봉 얼마 받고 누구는 세일즈 얼마 했고 계속 돈 얘기만 한다. 너 몇 살이니 올해. 26살 된 사람, 정말 많은 꿈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이 돈으로 가득차 있다는 게 엄마는 너무 슬프다.”
이 말을 들은 뒤 차씨는 “‘돈이 아니라 내 꿈을 다시 좇아야 되겠다’고 다짐했다”며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그 다음 날 사표를 내고 한국에 들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미국 유학 시절 “일주일 내내 <그대 그리고 나> 비디오 빌려보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며 “제가 그때 차인표씨 팬이 됐다”고 밝힐 정도로, 그동안의 연기 활동에 대해 호평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차씨가 한진해운 뉴욕지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1년 만에 그만둔 일, MBC 공채 탤런트 22기로 입사한 뒤 <한지붕 세가족>에서 대사 없는 ‘동네 건달역’으로 출연한 일, 단역 배우를 하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주연으로 발탁된 일,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주연 박중훈 역에 애초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거부한 일, 내달 7일 방송되는 MBC 드라마 <계백>에서 계백의 아버지 ‘호위무사’로 출연하는 일 등 차씨의 방송 활동 전반에 대한 사연도 소개됐다.
방송을 마무리하며 손 교수는 “백분토론을 제가 할 때 그렇게 한 번도 안 빼놓고 보셨다니까 사회적인 문제도 관심이 많으실 것 같다”며 향후 사회적 이슈 관련 <손석희의 시선집중> 출연을 제안했고, 차씨는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주제넘은 건 모르면서 할 순 없지만 성의껏 (임하겠다)”고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