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의 낯선사이]그들이 ‘화학적 거세’를 선호하는 이유


[정희진의 낯선사이]그들이 ‘화학적 거세’를 선호하는 이유
2012.08.30 20:19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독특한 시선이 있다. 다른 범죄는 처벌하면 그만인데, 이들에 대해서는 상담·치료 등 ‘다양한’ 대책이 제시된다(절도나 폭력 사범에게 ‘심리 상담’을 운운하지는 않는다). 새누리당은 아동 성범죄와 ‘변태’ 성욕에 국한했던 성충동 약물치료, 이른바 ‘화학적 거세’를 강화하는 요지의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7월 관련법 시행 즈음, 효과와 인권 침해 여부를 놓고 여러 차례 논쟁이 있었다. 2~6%에 불과한 성폭력 신고율, 신고와 기소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는 고통, 낮은 신고율만큼이나 낮은 기소율과 더 낮은 유죄 판결률을 고려할 때, 성범죄를 막기 위한 대책이 ‘주사(注射)요법’이라니, 그다지 설득적이진 않다.

어쨌든 성범죄의 규모와 실태가 워낙 심각하기에, 효과라도 확실하다면 극렬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성범죄의 원인성별 권력관계의 불균형 때문이지, 남성호르몬 과다로 인한 생리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화학적 거세’는 진짜 문제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는, 이 경우에는 질 나쁜 맥거핀이다.

‘섹스’는 뇌로 하는 것이지 성기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발기는 혈액이 조직을 채우는 것인데, 이는 뇌의 역할이고 그 기능을 가능케 하는 ‘자극’의 내용은 철저히 사회적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 ‘화학적 거세’는 과학적 근거도 실제 효과도 없다.

나는 20여년간 여성에 대한 폭력 관련자들을 상담해왔는데, 가해자들의 가장 절실한 호소는 피해의식과 분노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는 피해의식과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법체계와 신고한 여성, 그리고 ‘여자들이 판치는 세상’에 대한 분노다. 이러한 사고방식과 심리상태의 근거는 ‘성범죄 불가피론’이다. 남성에게 삽입 섹스는 소변과 같은 신체의 자연스러운 배설행위이므로 성폭력이나 성구매를 불법화하는 것은 ‘오줌을 못 싸게 하는’ 고통과 같다는 것이다.

“남자는 참을 수 없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참는(?) 남성, 혹은 ‘재수 좋아 안 걸린’ 대다수 남성들의 신체는 배뇨 통증으로 폭발 직전일 것이다. 가해자들의 이야기는 나이, 학력, 계층과 관련없이 사전 회의라도 한 듯 똑같다. 이는 이들의 성 인식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의 합창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통념이기도 하고, 성범죄의 원인을 통제할 수 없는 성욕에서 찾는 ‘화학적 거세법’의 현실인식과 동일하다. 성욕이 배설과 같다니? 논의의 가치는 없다. 문제는 이 절대적 무지에 저항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회 전체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 ‘상식’에 동의하고 있다.

그들은 나를 설득하려 한다. “갑자기 길 가다가 오줌이 마려우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길거리에서 그냥 해결할 수도 있고(성폭력을 의미한다), 화장실을 찾을 수도 있고(성 구매), 참으며 집까지 갈 수도 있겠죠(파트너와 성교). 근데, 화장실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싸는 사람이 많겠어요? 참고 집에 가는 사람이 많겠어요? 또 집에 간다고 해서 쌀 수 있는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파트너가 없거나 동의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여성의 몸을, 남성을 위한 용기(用器)로 취급하는 것은 가부장제 성문화의 핵심이다. 이러한 의식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성범죄의 원인이 인체의 화학에 있다는 전제에서 이를 억제하겠다는 발상은 성범죄 예방이 아니라 부양책이다.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성범죄도 사회적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완전한 근절은 불가능하다. 맞다. 하지만, 그러니까 우선 ‘화학적 거세’라도 하고 보자? 진실은 그 반대다. 해결 방법 중 하나라는 ‘화학적 거세’의 사고방식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원인을 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의혹은 또 있다. 성범죄자에 대한 가부장제 사회의 지나친 도덕적 낙인(변태, 괴물 등)과 ‘참지 못하는 그들’에 대한 경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거의 모든 통계조사에서 성범죄자에 대한 강력 처벌을 주장하는 입장은 여성보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남성 문화는 왜 이토록 성범죄가 아니라 성범죄‘자’를 혐오할까. “나는 아니다”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아닐까. 성범죄의 원인은 일상의 성차별, 성역할 구조인데, 이를 수용하게 되면 모든 남성은 피곤해진다. 남성은 잠재적 피고인이 되지 않기 위해 기존의 여성관, 세계관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

그러나 소수 ‘변태’의 문제로 축소하면 성범죄는 남성 문화의 결과가 아니라 특수화, 엽기화된다. 그럴수록 여성들은 밤거리나 여행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등 스스로를 통제해야 한다. 반대로 국가와 사회를 통치하는 ‘안 걸린’ 남성들은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하면서 보호자, 시혜자, 감시자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이것이 ‘화학적 거세’의 배경이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