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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의 조국-김여진은 왜 '미친짓'을 했나


2011/05/23 김여진에게 물었다 "반대세력 두렵지 않나?" (11)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청춘콘서트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지난 번 포스팅한 <안철수-박경철>편에 이어서 오늘은 <김여진-조국>편이 되겠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기사를 보니까 한나라당에서 반값 등록금 공약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발표했다고 하네요너무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러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있더군요여러분도 저랑 같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바로 <배우 김여진>입니다한나라당의 발표가 있으면서 김여진에게 기자들의 인터뷰가 쇄도하지 않을까 예상되네요어제 청춘콘서트에서도 김여진의 반값 등록금 이야기와 그녀의 사회실천에 대한 많은 질문들이 재미있게 나누어졌습니다게다가 조국 교수님이 김여진씨의 대담자로 나오셔서 더 재미난 대담이 이뤄졌답니다.

먼저 추천 단추부터 꾸욱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들은 미모로 밀겠습니다
김여진-조국 교수님은 앞서 대담자로 나오신 강연계의 스타 안철수-박경철을 많이 의식하신 듯 미모로 밀겠다고 하시며 등장했는데요등장부터 청중들의 큰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뚜벅뚜벅 무대로 걸어 나오시는데 그 광채가 선남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더군요.
▶ 김여진 : 교수님은 학교에 계시는 분이니까 요즘 젊은 친구들 보면 어떠신지 궁금하다.
▶ 조국 : 왜 이 시대 청춘들이 이 좋은 오후에 여기 와 있을까밖에서 놀던지얼마나 공기도 좋고 볕도 좋은가여기서 출발한다청춘의 특권은 패기이고 도전이고 명랑함이다이런 것들이 언제부터인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을 느꼈다근래 몇 년간 학생들이 계속 힘이 빠지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다원인이 뭘까불안이라고 생각한다왜 불안한가열심히 공부해서 학점 따고 스펙 따고 비싼 등록금 내고 공부를 해도 졸업해서 취업을 할 수 있을까취업 후에는 집 마련할 수 있을까애 낳아서 잘 지킬 수 있을까정년 보장까지 받을 수 있을까등등등... 이런 불안들이 가장 발랄하고 패기 있게 움직여야 할 사람들은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그러나여러분 스스러가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야 된다간단히 얘기하면, “난리를 치라고 말하려고 여기에 왔다.
▶ 조국 : 김여진씨는 홍대 비정규직 노동자 등 종횡무진 활약 하고 있다최근에는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김여진씨 트위터에 정신 나간 이야기를 해서 검색어 1위에 등극하셨다입에 담기 어려운 표현인데 미친X라고 표현을 했다좋았던 것은 김여진씨가 이렇게 답을 했다그래 그럴지도왜 지금 미친 짓을 하고 계신지 묻고 싶다.
▶ 김여진 : 한 트위터 친구 분이 축하 맨션을 달아주었다. “축하합니다국민 미친년에 등극하셨습니다.” 라고(웃음). 그 분이 어떤 분인지는 전혀 몰랐다정말 딱 3자로 미친년 이렇게 쓰셨기에 참 신선하다고 생각을 했고생각해보니 “맞을지도” 라고 답을 드렸던 것인데... 굉장히 파장이 커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1월부터다홍대를 찾아갔던 게 큰 계기가 되었다어떤 분들은 제가 사회적 활동을 하고 발언하는 것이 갑작스럽다고 생각하실 수 있다여러분 나이일 때 저도 사회운동이라는 난리를 치면서 살았다어느 날 너무 힘이 들어서 더는 이렇게 못살겠더라행복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 그만두고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됐다저는 지금도 정치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러나 몇 가지 계기들이 있었다.
4~5년 되었다국제구호활동단체 JTS에서 거리모금을 나가면서 배고픈 사람이 먹을 수 있고 아픈 사람이 치료받을 수 있고 아이들은 제 때에 배울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같은 동료 연기자 분들의 자살을 보게 됐다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고 최진실씨의 죽음이었다최진실씨 같은 경우는 모든 연기자들의 워너비라고 할 수 있었다몇 번의 추락의 위기를 다 극복하고 가장 오랫동안 정상에 있었던 분이다꿈의 정점에 계셨던 분이 자살로 돌아가셨다충격은 컸다우리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내가 욕망하고 있는 것이 도대체 뭘까 라는 생각을 했다그러면서 여러 가지 활동에 다시 참여하게 되었다.
인도의 천민마을에 봉사활동을 갔다여러분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며 조계사에서 진행자로 참여했다그렇게 한발 한발 걸어왔다저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왜 저분들이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을 하며 하대 받아야 하는가왜 우리는 그런 환경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가그 분들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그 분들이 어떤 환경에서 밥을 먹고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그런데 평균 나이 60세가 넘는 그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우리는 투명인간이 아니다그 분들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그 반응이 너무나 열렬해서 정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다거기에는 트위터라는 강력한 소통의 무기가 있었다제 목소리로 말씀을 드릴 수가 있었다트위터로 응원도 해주시고 모금도 해주시고 조선일보에 광고도 냈고 파티도 하고 윷놀이도 하고 영화도 함께 봤다이런 와중에 타결이 됐다우당탕탕 뭐를 하고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마무리가 되었다노래를 부르고 김치를 담갔을 뿐인데 세상 모든 문제가 나의 문제로 다가왔다여기도 그런 분들이 계시네저기도 그런 분들이 있네이게 남의 일이 아닌 것이 된 것이다.
작은 경험 하나하나가 모였다누구나 물에 빠질 수 있고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내가 누군가를 외면할 때내 안에는 나도 반드시 저런 경우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한다지금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것은 여기로부터의 해방인 것 같다사람들과 함께 도와가면서 갈 수 있다지금은 가속도가 붙어서 여러 가지 과제들에 대해서도 계속하고 있다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대단한 것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그렇게 즐겁게 지내고 있다.
▶ 조국 : 김여진씨의 활동에 대해서 반대를 표하는 사람도 있고할퀴려고 손톱을 내밀거나 싫어하거나 셈이 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여러 가지 힘든 일이 많지 않을까 예상되는데 두렵지 않으신가?
▶ 김여진 : 어제 트위터에 “상처는 오직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는다. 그러니 나한테 상처를 주고 싶거든 어떻게... (매력이라도 좀) ” 이렇게 썼었다이게 솔직한 심정이다함부로 상처받지 않겠다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말을 하면 아프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다누구나 사람은 생각이 다르다. 저에게는 저의 생각이 있고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생각이 있을 뿐저도 누군가를 미워할 때가 있다그건 그 사람의 생각이다그 사람 눈에는 제가 그렇게 보이는 게 맞는 것이다거기에 대해서 상관 안 하면 된다.
정말 두려운 건 저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다저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칭찬들을 해 주시는데 저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그래서 이름도 날라리라고 지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들의 기대가 약간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 조국 : 김여진씨가 날라리 외부세력이라는 말을 썼을 때 너무 좋았다날라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어떤 투사 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배우면 배우로서교수는 교수로서자기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간단한 말로 보여주신 것 같다나는 날라리인데날라리 입장에서 이 꼴은 못 보겠다고 하신 거 같다.
▶ 김여진 : 교수님은 최근 콘서트를 하시며 전국 방방곡곡 안다니는 데가 없으시다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안 해도 될 일을 하시니 칭찬을 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공격도 많이 받고 계시다그 심정을 듣고 싶다.
▶ 조국 : 2012년 때문이다지금까지 배워왔고 가르치고 있는 법과 제도의 바른 모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다지금 이대로 간다면 2012년 이후에 또 이런 모습이 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세월이 흘러 그때까지도 이런 식으로 간다면 스트레스 쌓여서 당장 내 암에 걸리겠더라자신의 노동 가치를 정당하게 대우 받고 합리와 상식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하겠기에 정치인은 아니지만 제 나름의 방식으로 질러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기 계신 청춘에게 묻고 싶다결혼하고 아이 낳았을 때 아이들이 여러분에게 물을 것이다아빠 엄마 2012년에 뭐했어답을 하나 해야 될 것 아닌가? 2012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우리나라에서는 입법 권력과 행정 권력이 모두 동시에 바뀐다주변 5개 나라의 모든 권력이 바뀐다엄청난 변화가 2012년에 일어난다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바뀌고 남쪽의 시스템이 바뀐다날라리건 누구든 간에 각자의 방식으로 뭔가를 해야 되지 않겠는가.

여러분들의 행복을 위해서 살라고 말하고 싶다스펙 자체로 보게 되면 여러분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고 계시다스펙 쌓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제도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는 개인적으로 스펙을 쌓는다고 하더라도 승자가 될 확률이 매우 적게 되어있다. “스펙 더하기” 제도를 바꾸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여러분의 행복을 위해서 제도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 청중질문 :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26살의 대학원생이다. 3년 전 대학생일 때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거리로 뛰쳐나가기도 하고 사회 문제에 대해 내 생각을 표현하기도 했다어느 날 주변을 둘러보니까 사람들이 그러더라어디서 여자가... 할머니께서는 우리 손녀가 빨갱이가 되었다고 하셨다그래서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구나’ 생각하게 되었다정의에 한 발짝 다가서고 싶었는데정의라는 것이 생각했던 것만큼 지지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실망하고 좌절하고 뒤에서 불평불만만 하게 되는 사람이 된 것 같다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실천이 안 된다.
▶ 김여진 : 나는 외면하고 회피하면 행복하지 않았다학교 다닐 때 열심히 운동하다가 힘들어서 관뒀다외면하면서 오로지 나의 꿈을 향해 살아갔다그런데그 길이 바로 낭떠러지였던 것이다동료들의 자살을 보며 그걸 알게 되었다그제서야 브레이크를 잡았다이렇게 사는 것이 내가 행복한가 물어봐라사실 정의라기보다는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보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불편한 것은 불편한 거다불편함은 눈을 감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홍대에서 했었던 일들도 굉장히 애쓴 것 같지만 안 그렇다시간 날 때 잠깐 들렀던 거다트위터로 사람들이 모여서 김장을 해드렸는데 딱 2시간 만에 끝났다일주일에 한 두시간 이상 투자하지 않았는데 그런 결과를 가지고 왔다가장 많이 놀란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일주일에 한두 시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즐겁다그런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다른 사람 욕하고 돈 쓰고 술 먹는데 에너지 쏟지 말고, 이렇게 재미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는데 에너지를 써 보자는 것이다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아주 작은 것 하나씩만길고양이 문제유기견 문제학대받는 아이들 문제급식 문제환경 문제등록금 문제 무엇이든 상관없다일주일에 한 두 시간씩만 시간을 내서 해보시면 된다그게 얼마나 즐거운지 맛보면 그 다음엔 고민할 것 없다가족들이 반대한다고 일일이 답하고 설명하고 이유를 말하느라 힘 빼지 마시라. ‘그 사람들은 그렇게 보는 가봐’ 이렇게 가볍게 넘어가면 될 것 같다이 일을 하고 있는 내가 행복해 보이면 결국 해결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당차고 편안한 김여진씨의 이야기 속으로 정신없이 빨려들어 갔습니다조국 교수님의 기운차고 논리적인 말씀을 들으며 답답했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들이 점점 또렷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외면한다고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는다정의라는 것은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솔직해지면 공감하게 되고공감하면 행동하게 되고행동하면 변화가 생기는 거지요오늘 조국 교수님과 김여진씨를 통해 크게 깨닫습니다청춘들이여우리마음에 대해 솔직해지자그리고 정의를 외치자!

어제 강연에 참석하지 못한 수많은 이 땅의 청춘들에게 이 글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김제동-법륜스님이 함께 나눈 대담 내용입니다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김여진, 광화문 유세 현장에서 연설


아가에게

아가, 지금 쯤 아빠와 온 집을 기어다니며 놀고 있겠구나. 엄마가 요 며칠 너와 떨어져 있는 때가 잦아졌지. 왜 그러는 지 너에게 변명을 하려고 해.

네가 이 세상에 온 이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같이 있었는데. 정말 젖먹던 힘을 다해 ,널 젖먹여 키웠는데 말이야. 엄마 혼자 만의 힘으로 널 온전히 키워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

물론 지금이야 엄마와 네가함께 있는 게 제일 좋지.조금 더 지나면, 네가 아장아장 걷게 되고 또 말도 하게 되고 친구와 놀 줄 알게 되면 어린이 집도 가고 유치원도 가게 되겠지.

바로 이틀 전 우리동네 성당 부설 유치원에 원생을 뽑는 추첨을 하더구나. 이웃의 네 살 누나는 다행히 붙었지만 .열명 남짓 뽑는데 80명도 넘는 아이 엄마들이 그 곳에서 추첨을 했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곳에 가질 못했어. 더 먼데, 더 비싼데를 알아봐야 할테지. 네 살 밖에 안됐는데 벌써 어딘가에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 아이들을 보며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더구나.

엄만 널 뱃속에 넣고 저기 부산 영도까지 크래인 위의 진숙이모를 보러 막 왔다갔다 할 만큼 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아가 널 낳고 나니 엄만 많은 게 두렵단다.

네 몸과 마음이 그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랄 뿐인데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그게 참 큰 바램인 상황이야. 네가 갈 안전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결국 못 찾으면 어쩌나,학교에가서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라도 당하면 어쩌나, 아니 네가 누군가를 괴롭히고 따돌리는 걸 먼저 배우면 어쩌나, 성적에 목메 죽고 싶게 괴로운 학창시절은 보내면 어쩌나, 만일 대학을 포기했다고 해서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야하거나 네가 하는 노동이 싸구려 취급 받으면 어쩌나...

아가 엄만 매일 매일 이런 상상을 하고 또 스스로 마음을 다잡곤 해. 그래서란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이 자리에 섰단다.

엄마가 살아가고 네가 살아가야할 이 세상이 온통 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로 변해 버린 걸 그냥 볼 수만은 없었단다. 자연은 파괴되고 아이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자살을 하고, 청년들이 꿈을 꿀 수 없으며 노인들은 자기 몸 편히 누일 여유조차 갖지 못하는 사회. 너무 미안해서 이대로 너에게 물려 줄 수는 없었단다.

엄만 네가 행복한 아이가 되길 바래. 네가 무얼 좋아하고 무얼 잘하든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어. 학교에서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하고 네 친구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어. 어떤 이유에서든 차별은 나쁜 것임을 배웠으면 좋겠어. 경쟁하고 이기는 법이 아니라 함께 연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웠으면 좋겠어.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배워 군사 독재 시절의 아픔과 민주화 과정의 많은 희생을 알게 되면 좋겠어.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어.

그리고 아가...난 네가 청년이 되었을 때쯤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대륙을 건너 유럽까지 여행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더 이상 너와 같은 얼굴, 같은 말을 배우는 북쪽의 아기들이 굶주리다 죽어가는 일도 없고, 어떤 전쟁의 위험도 다 끝이 나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 말 하다 보니 엄마의 꿈이 참 크다. 참 또 하나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엄마가 다시 티비에 나오고 네가 그걸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가 원래 연기를 하던 배우라는 걸 네가 알면 좋겠다.

아가, 널 위해, 그리고 엄마 자신을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서있어.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투표의 권리를 행사할 거야.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 그 초석이 될 선택을 할 거야. 그렇게 아주 조금씩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일에 참여 할 거야.

아가, 지금 잠시 떨어져 있어 미안해. 네 웃고 찡그리는 얼굴이 벌써 눈앞에 삼삼하다. 금방 갈게. 사랑해. 아주 많이.

2012 12월 겨울, 18대 대통령선거 기호 2번 문재인 대통령후보 광화문 유세현장에서...엄마가.

트위터와 기적의 메뉴얼, 박성미, 날라리 외부세력


2011 12 27
트위터와 기적의 매뉴얼 , 박성미 | 트위터러, 날라리 외부세력, 영화감독이다.

지난 2월 말, 49일간의 홍대 투쟁이 승리로 끝나던 날, 나는 그때의 말할 수 없이 먹먹한 감동을 기억한다.

“하니까 되더라는 최초의 경험. 그것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노동자들의 투쟁은 무모해 보이고 위험해 보인다.”라고 『소금꽃나무』에서 김진숙 씨는 쥐똥 나오는 도시락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이 얻어낸 첫 승리를 회고하며 적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지인의 제안으로 ‘홍대 청소노동자 돕기 조선일보 광고’ 작업에 참여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1 10, 트위터로 성사된 번개에서 김여진 씨가 제안한 이 아이디어는 홍대 사건에 대해 단 한 줄 써주지 않는 조선일보에 광고를 내자는 것이었다. 오로지 트위터로만 모금을 진행했고, 7일 만에 1200만 원이 모였다. 그리고 조선일보에서 아주 예외적인 단가에 허락해준 이 광고는 큰 이슈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자발적으로 모인 트위터러(트위터 사용자)들이 홍대 청소노동자 돕기 바자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이 두 가지 사건은 ‘날라리 외부세력’이라는 새로운 참여방식을 크게 알렸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광고나 바자회 준비에 참여한 이유가 사회나 노동 문제에 큰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좀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단지 ‘아주 조금 의미 있을 것 같아서’ 그 일을 수락한 것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자발적으로 한다는 날라리 외부세력의 아름다운 정체성. 이것은 노동 문제에 관심 없던 많은 사람들을 ‘날라리’가 되게 만들었다. 직장인, 프리랜서, 약사, 의사,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홍대로 왔다. 그들은 깃발 대신 기타를 들었고 구호를 외치는 대신 김치를 담갔다.

조선일보 광고를 위한 모금은 금액이 올라가는 과정이 속속 트윗으로 공개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쭉쭉 올라가는 모금계좌의 금액을 확인하고 고무되었다. 또한 6일 만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확인한 사람들은 작은 참여를 했을 뿐인데 무언가 해냈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동안 혼자서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던 사람들이 스스로가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스스로 그것을 기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것이 홍대 문제 타결이라는 극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었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란 것이다. 더 거대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기적을 만드는 매뉴얼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날라리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도 조직하지 않고 아무도 시키지 않지만 당연히 한다’는 마법의 동의. 누가 안 나온다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고 그때 없었다고 뭐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위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날라리들은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무언가 했다. 작지만 눈에 띄는 성과들이 이어졌다. 트위터에서 주고받은 멘션만으로 ‘쥐벽서 사건’의 벌금을 내주기 위한 티셔츠를 팔기 시작했고, 하루 만에 ‘강정마을 돕기 현수막 쓰기 번개’가 성사되었다. 사람들은 작은 힘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성과를 경험했고 기억했다. 스스로 매뉴얼을 만든 셈이다. 여기서 온라인에서 소소한 참여들이 이루어냈던 몇 가지 멋진 일화를 소개한다.

쥐벽서 티셔츠 20 포스터에 쥐를 그렸다는 이유로 검찰이 실형을 구형한 분이 탄원서를 써달라는 부탁을 트윗에 올린 후 400여 명의 탄원서가 모였다. “동참”, 10분이면 써요”라는 트윗 글과 알티가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유명 영화감독들도 탄원에 동참했고 실형을 벌금형으로 바뀌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러자 날라리들은 쥐 그림으로 티셔츠를 만들어 팔아 벌금을 메우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해서 이틀 만에 600명 넘는 사람들이 즐겁게 동참했다. 수익금으로 벌금을 충분히 다 채우고도 주문이 계속 이어져 “죄송합니다. 더 이상 팔지 않습니다.”라는 공지를 올려야 했다. 사람들의 자유로운 표현까지 힘으로 강제해보려고 했던 공안당국을 보기 좋게 웃음거리로 만든 사건이었다.

100
개의 항의글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해상공사 준설작업이 시도되었던 날이었다. 트위터에서는 위기의식이 퍼졌다. 바다에 시멘트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 문득 부산경찰청 홈페이지에 한진중공업 공권력 투입을 반대하는 200여 개의 항의글이 올라갔던 사건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해군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보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큰 기대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적었던 트윗은 이렇다. “글 하나는 힘이 없을지 모르지만 100개의 글은 힘이 됩니다.” 순간 놀라운 속도로 알티가 이어졌고 하나 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썼어요”, “했어요”라는 답글은 또 다른 알티를 불렀다. 반나절 만에 실제로 글 100개가 올라갔다. 이 소식을 강정 트위터 통신원인 김세리 씨에게 전했더니 준설작업을 막느라 힘든 상황에서 홈페이지에 항의글 100개가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더 놀라운 것은 해군이 글을 전부 삭제해버렸다는 것이다. 사실 글을 전부 삭제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보다는 사람들의 무서운 항의를 알아차렸다는 것, 항의가 두려웠고 충분히 압박을 느꼈다는 사실이 성과로 느껴져 기뻤다. 그날 해군은 결국 준설작업을 실행하지 않고 돌아갔다.

네이버 검색어를 바꾸다 평소에 한진중공업에 관해서는 스스로는 잘 언급하지 않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급하게 도움을 호소했다. 희망버스가 출발하기 전날인 6 10, 한진중공업 사측은 조선소 봉쇄를 시도했다. 유성기업 사태 때 있었던 용역깡패의 폭력이 한진중공업에서 재현되기 시작했다. 멀리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유성기업이나 BBK 사건 때 시도했던 네이버 검색 치기가 떠올랐다.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트윗에 네이버 검색어 창에 한진중공업을 쳐보자고 제안했다. 좀 있으니 사람들로부터 답변이 왔다. “아무리 해도 안 떠요. 정말 그랬다. 그러다 한 두 사람이 더 제안하기 시작했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을 치자며 리트윗을 했다. 하지만 네이버 검색어에는 여전히 연예인들의 이름만 가득 떠 있었다. 아무리 치고 또 쳐도 뜨지 않았고, 한 여배우와 여배우 남자친구의 이름, 그들의 열애설이 계속 떠 있었다. 순간 슬프고 답답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는데 연예인의 새 남자친구가 더 중요하단 말인가. 고작 검색창에 검색어를 치면서 눈에 눈물이 고인 건 처음이다. 그런데 더 눈물이 났던 것은 흐릿한 눈물 사이로 ‘한진중공업’이라는 검색어가 눈에 띄기 시작했던 것이다. 트위터에서 사람들이 힘을 얻었다. 하루 종일 트위터에서 ‘한진중공업’ 검색어 치기 운동이 벌어졌다. 10위에서 9, 9위에서 5, 3위……. 배우 김여진 씨는 검색어가 떴으니 기자 분들 기사를 좀 써 달라고 다급하게 호소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꾸 치니까 검색어 순위가 정말 올라간다. 마치 게임하는 것처럼 재미있다”며 진심으로 즐겁게 참여했다. 그날 검색어 순위는 암묵적인 게임처럼 타임라인을 가득 도배했다. 물론 그 타임라인을 바라보며 유치하게 검색어 조작이나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은 세상을 낫게 하는 데 무엇을 하셨냐고. 우리는 적어도 ‘여배우의 남자친구 이야기가 수 십 명의 노동자가 용역깡패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보다 더 주목받는 현실’을 바꿨다고. 잠시나마 바꿨다고.

하룻밤 사이의 기적, 외신의 보도 한진중공업과 85호 크레인이 최초로 외신에 알려진 것은 사실은 아주 절박한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1차 희망버스가 다녀간 뒤 뿔난 한진중공업 사측은 강제진압을 실행하겠다고 선포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짐을 모두 내렸습니다. 만약 크레인 강제진압을 하게 되면, 선택은 하나밖에 없습니다.”라는 트윗 글을 올렸다. 날라리의 한 친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와 통화했다. 다들 그 글의 의미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뭐라도 하고 싶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겨레> 영문 기사를 외국 기자들에게 트윗하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김태동 교수의 제안이었다. 그것을 보고 링크하며 배우 김여진 씨는 외신기자들에게 “나는 한국의 여배우이고 내 친구가 크레인 위에서 160일째 농성하고 있다.”라는 멘션을 보냈다. 트위터러들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과연 외국 사람들이 볼까,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약한 방법이었지만 사람들은 열심히 영문 기사를 링크하고 트윗하며 외신기자들에게 멘션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도 프랑스어로 트윗했는데 그 트윗이 불어권인 아프리카까지 퍼졌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또 퓰리처상을 받은 유명한 기자가 한국 유학생의 요청으로 이 사건을 트윗했고 영국 가디언지도 리트윗했다. 그리고 그 새벽에 마침내 알자지라 기자 한 명이 흥미를 표시했다. 곧이어 외국 유학중인 한 트위터러가 그 기자와 연락을 취했다며 아침 미팅에서 이 건에 대한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그러자 한진중공업 크레인 사수대 조합원들이 그간 찍었던 동영상 자료를 영문으로 만들어 기자에게 보냈다. 트위터로 급하게 연락된 미국 유학생이 번역을 도와준 덕분이었다. 그날 한국시간 새벽 4, 알자지라의 인터넷방송 더 스트림(The Stream)에서 김진숙과 김여진 그리고 85호 크레인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그리고 조선소 봉쇄 당시 조합원들이 용역의 폭력으로 끌려 다닌 동영상도 공개되었다.

이 작은 사건들로 사람들이 얻게 된 것은 자신감이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함께 하면 된다는 생각. 우리가 해냈다는 생각. 세상은 힘 있고 강한 사람들이 바꾸는 게 아니라 평범한 우리가, 이 자리에서 바꾼다는 생각. 그것에 대한 믿음이 우리가 얻게 된 매뉴얼이었다. ‘약한 사람들은 그저 힘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흔들렸다. 표면상으로는 고작 트위터로 해낸 작은 일들이었지만 사람들 내면의 생각은 지각변동처럼 크게 흔들렸다

‘희망의 버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시민운동의 결정적인 홈런이었다. 잠재적으로 꿈틀대던 분노, 공감, 사랑의 마음들이 활짝 꽃을 피웠다. 예를 들어 1차 희망버스 때 나의 시위도구는 아이폰과 트위터였는데 희망버스 상황을 실시간으로 올리면서 수도 없이 쏟아지는 응원 메시지와 감동의 댓글을 읽었다. 그날 영도조선소에 있었던 것은 700명이 아니라 그 뒤에 함께하는 수 만 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감동적인 응원의 글은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여러분”이었다.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곳에 있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멘션만 열 개도 넘게 받았다. 그리고 그때 사람들이 얼마나 참여에 목말라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알티와 응원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무관심과 안락한 삶을 살던 사람들은 스스로 풀지 못한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결국 2차 희망버스 때 거대한 참여로 폭발했다.

희망버스와 관련된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나와 굳이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요점은, 이것이 주모자가 없는 조직이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기존의 조직된 노동단체들이 놀랐다. 두 번째로 언론과 경찰이 놀랐다. 경찰은 1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소환장을 발부했으나 주모자와 배후세력을 찾을 수 없었다. 언론은 어떻게든 이것을 타파해야 할 ‘조직 단체’로 몰아세우고 싶었지만 그러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실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희망버스는 단체가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성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트위터라는 생명체와 그 가능성

기존의 미디어는 일방적이었다. 미디어가 대중의 특징을 정했다. 미디어가 어림잡고 있는 대중의 특성은 ‘자극적인 것과 화려한 것, 세일을 좋아하며 남들보다 돋보이고 싶어 하고 부자들을 부러워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트위터에서는 광고도 경쟁도 죽었다. 트위터에서 살아남은 것은 감동을 주는 글과 진정성 있는 글, 연대를 호소하는 글이었다. 사람들은 의미 있다고 생각될 때 리트윗을 했고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글을 팔로우(구독)했다. 그리고 기존의 만들어진 언론의 불편한 진실들을 밝혀내기 시작했다. 트위터는 기존의 미디어와 아주 다른 방식으로 소통되었고 선한 의도를 가진 가치 있는 글들이 걸러지고 물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존의 광고나 미디어로부터 속임을 당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통탄하기 시작했다. 수평적인 소통과 정의로움에 대한 가치 선택이 사람들로 하여금 ‘깨어나게’ 한 것이다. 트위터에서 김연아보다 김진숙, 김여진이 더 인기를 얻은 것은 선한 의지에 대한 추구였다.

그 결과로 부와 성공이 아닌, 다른 가치가 트위터를 덮쳤다. 그것은 정의와 연대와 사랑과 감동이었다. 혹자는 트위터에서 두드러진 이러한 성향에 놀라워했다. 사실 대중은, 사람들은 누구나 아낌없이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내면에 있지만 기존 미디어는 이것을 무시해왔다. 하지만 ‘팔로우’(가치 선택)와 ‘리트윗’(연대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트위터는 대중들이 기존의 미디어에서 판단했던 것보다 훨씬 선하고 현명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힘의 가장 놀라운 폭발력은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강정에, 한진에 무슨 일이 닥치면 트위터러들이 당장이라도 세계 외신에 뿌릴 준비가 되어 있고 당장이라도 항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 스스로 있는 그 자리에서 가장 잘 하는 것을 한다는 것만큼 무서운 힘이 어디 있을까. 어떠한 권력도 이 보이지 않는 실체를 상대할 수 없었다. 언론도, 권력도, 이 앞에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움직임이 가능했을까? 트위터에서 벌어졌던 모든 크고 작은 움직임들의 공통점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SNS로 뭔가 한 건 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명심해야 한다. 트위터라는 생명체는 다루려 하면 다루어지지 않는다. 조직하려 해도 조직되지 않는다. 뜻대로 움직이려 하면 자멸한다. 이것이 트위터라는 SNS의 생태계다. 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스스로 일어나도록 놓아두면 볕을 만난 듯 꽃을 활짝 피운다.

85
호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 지도위원은 안타까울 정도로 단순한 싸움의 방법을 택했다. 동료가 죽었던 크레인에 혼자 오르는 것. 민주노총 지도위원으로써 더 큰 ‘조직적’ 싸움을 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진중공업이라는 거대 재벌에 맞선 그 방법은 너무 미약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러나 힘과 강제성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동료에 대한 한없는 죄책감으로부터 나오는 굳은 마음가짐으로 몇 달을 버텼다.

그리고 김진숙은 트위터로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싸움이 아프다고 호소하거나 사람들에게 같이 싸우자고 외친 적은 거의 없다. 대신에 조용조용 사람들과 일상의 대화를 했다. 상추를 키웠다는 이야기, 크레인 위에 올라온 강아지 이야기. 그리고 아주 사소하고 재미있는 농담들. 또 트위터를 모니터링하다 제주 강정마을이나 유성 기업 등 투쟁현장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토닥이고 응원으로 알티를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싸움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김진숙 씨의 밝고 품위를 잃지 않는 모습과 결코 구걸하지 않는 의연함 그리고 타인의 투쟁을 먼저 감싸 안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감동했다. 그래서 한진중공업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모든 투쟁 현장의 사람들은 김진숙을 돕자고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조직적이거나 강제적인 힘으로 움직이는 대신 김진숙 씨가 지킨 것은 하나의 선한 원칙이었다. 이념으로 인한 강제가 아닌 인간적인 가치였다. ‘어떻게,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떠한 마음가짐을 갖느냐’이다. 그녀가 가진 올바른 마음가짐과 신념, 그녀가 한 것은 크레인 위에서 조그만 스마트폰으로 사람들과 함께 따스한 웃음과 고마움을 나누었을 뿐이다. 그녀는 이토록 전 세계로 퍼진 큰 싸움을 ‘계획’한 적이 없었으나 주인공이 되었고, 의도하지 않았으나 깃발이 되어 이끌었고, 정치를 하지 않았으나 세상을 바꿨다. 그리고 마침내 시민들의 힘으로 14년 만에 재벌 회장을 청문회에 세우게 되었다.

이 놀라운 변화 속에는 주도자가 없었다. 끝까지 200일 이상을 버티고 있는 김진숙이라는 사람과 단지 그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돕고 싶었던 사람들. 또 그저 각자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이들이 주인공이 된 거대한 ‘움직임’은 현실을 바꾸고 불가능했던 일을 이루어내기에 이르렀다.

“추수에 대한 기대 없이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법을,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우리의 의무를 다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김상봉 교수는 말했다. 트위터로 이루어진 모든 기적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현장을 다니고 트위터를 하면서 가장 기쁠 때는 “성미님 트윗을 보고 한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여기 왔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을 영도에서 만나거나, “님을 보고 나도 강정에 한 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였다. 그때야 비로소 ‘아, 사람들은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강정마을이 위급할 때 사람이 필요하다는 외침에 한 대학생은 그냥 바로 달려갔다. 고작 한 사람 간 것은 물론 그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움직였다. , 저렇게 그냥 달려가면 되는구나. 그리고 또 내 행동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움직였다. 그것이 지금 강정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넘치고 넘치는 이유다.

배우 김여진 씨는 이야기했다.

“아무런 눈에 띄는 결과가 없다 해도 그저 바라보라, 그리고 말하라. 꾸준히 지켜보라. 그러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같이 바라보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함께 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모든 사심 없는 마음들이 변화를 이끌었다. 새벽에 친구를 구하고픈 절박한 심정으로 알자지라 기자에게 보냈던 멘션 하나는 두 달 뒤 1면 탑 기사가 되어 돌아왔다. 르몽드, BBC, CNN, 로이터 그리고 세계에서 날라 온 연대 메시지까지. 우리가 그때 희망했으나 당장에 결과를 볼 수 없었던 것이었지만 그 마음은 돌고 돌아 큰 수확을 가져왔다. 그것은 반응이 없을 때에도 꾸준히 영어로 트윗하고 메일을 보냈던 트위터러들의 노력 때문이었다. 또한 세상을 바꾸자고 조직된 것이 아닌, 외로운 노동자 하나를 응원하러 가자고 만들어진 희망버스는 전국의 여론을 흔들고 재벌의 청문회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런 계산 없이 그냥 혼자 강정으로 달려간 한 청년의 마음은 그후 수많은 연대와 지지 방문이 되어 돌아왔다.

언젠가 금융계에 계신 분께 물었었다. 세상을 바꾸려면 얼마가 필요한가요? 대답은 1조 원. 그런데 나는 지금 단 한 푼 없이 모든 걸 바꾸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세상을 바꾸려 하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김상봉 교수의 말처럼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우리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은 예측하지 못했던 놀라운 열매를 맺는다. 여기서 우리의 의무란 바로사랑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룬 건 그것이 분노의 힘이 아닌 사랑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것도 사랑보다 뛰어난 힘은 없다.

사회참여를 할 수 있는 원동력 – 재미


11.11.11

10일 어제 드디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고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51) 309일 만에 농성을 풀었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분들이 힘을 모아주었죠.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배우 김여진씨
평화재단 청년리더십아카데미에서 김여진을 만났습니다

- 김여진씨가 집중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문제, 왜 관여를 하시게 된 건지 무엇을 호소하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트위터를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고공 농성에 대해서 들어는 봤었어요. 크레인에서 두 분이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두 사람을 잃고 받아낸 약속이 '정리해고를 할 때는 노조와 합의를 하겠다'는 것이었어요. 법적 효력에 관해서 알아 보니 단체 협약은 회사가 어기면 벌금이 2000만 원 정도라서 어겨도 그만인 것이라고 합니다. 목숨을 걸고 그것을 따냈는데 여론만 잠잠해지면 휴짓조각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올라갔던 것도 평생의 친구를 잃으면서 얻은 약속인데 그게 무시되고 다시 정리해고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진숙씨는 트위터에서 처음 만났어요. "위에서 뭐하세요? 크레인 움직이시냐?" 말을 걸었더니 기가 막히셔서 웃곤 하셨어요. 단식을 오래 하셔서 음식을 잘 못 드시고, 고구마로 만든 죽 같은 것만 드시고요. 사진도 올리고 친근하게 친구처럼 지내게 됐고 농담을 참 잘하십니다. 건강하셔야 한다고 했더니 너나 잘하라며 늘 남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분이 어떤 고통에 있는지 사람들은 잊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것... 씻고, 배설하고, 바람, 모기 등등 그 괴로움이 대단한데, 그것에 대해 정치하시는 분들과 기업하시는 분들의 태도를 보면 '저 분들은 이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 안하는구나' 싶었어요. '좌빨'이라고만 하고 데모꾼이라고만 봤어요.

그러던 중에 용역을 동원하는 문제가 있었고, 뜻이 강경하다 보니 용역들이 침탈하면 뛰어내리실까 불안했습니다. 바로 달려가서 크레인이 보이는 앞에 서서 "나 여기 와 있다." 했어요. 1, 2차 희망버스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 와중에 임신을 하게 됐고 남편 다음으로 김진숙씨에게 이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그래서 이제 희망버스 못 간다고 전했어요. 친한 친구였는데 정말 딱 끊으셨어요. 놀랐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셨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분을 지켜보면서 아이를 지켜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그 분도 잘 알고 계셨고, 그 분은 저를 배려해서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한동안 트위터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다가 조금 지나서 메일을 보내셨어요. 잘 지내느냐 궁금하다고...

지금도 사람에 대한 애정이 제일 크신 분이고, 저 분 때문에 알게 된 많은 사실들이 있어요. 청문회 때 한 국회의원이 조남호 회장에게 처음에 돌아가신 노동자 사진을 보여줬더니 모른다고 했어요. 조남호 회장의 기억 속에서는 이미 사라진 것이지요. 어떤 것을 어겼는지 그 의미를 모르고 있었어요. 계속 되뇌는 말은 절차 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긴급한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 했다는 것.

그러나 그 책임은 경영진에 있는 것인데 필리핀으로 노동력을 돌려서 또 부려먹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국가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해고를 일삼기 쉽고, 임금 적게 주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 노동하게 하는 곳이 많습니다. 이것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말하면서요. 노동 유연성은 해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사고가 박혀 있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모순이 있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배우 하면서 여러 가지 사회참여를 하시니까 비판도 받고 그러시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소외 받는 사람들을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어떤 힘을 갖고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비판을 감수하고 하는 것입니다. 제대로만 각오하면 무서운 일도 아닙니다. 한 개만 포기하면 됩니다. 바로 돈입니다. 연기라는 것은 계속할 수 있습니다. 돈을 벌려면 TV 출연을 해야 할 겁니다. 당분간은 안 시켜줄 것 같아요.

그런데 임신해서 어차피 못해요. 겁을 내는 것도 정말 그럴 만한 일인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욕을 흔쾌히 먹든가, 욕먹기 싫으면 방법을 연구해 보면 됩니다. 말투나 사람을 대하는 방법 등등. 조남호 회장 같은 분들도 그들이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고 그들이 보면 제가 저주 받은 좌빨 무언가처럼 보일 것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옳은 대로 하는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갈 것인가입니다.

나만 옳다고만 하면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재밌게 하면 먹힙니다. 내가 행복한 것이 1번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얼굴이 펴서 즐거워 보입니다. 궁금해서 따라오게 됩니다. 그런데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고민하게 되고 무거워집니다. 그러면 옆에 가기 싫어집니다. 대단하다 정의롭다 잘 갔다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의 마음이지요. 무엇을 하든 여러분이 반드시 먼저 즐거워야 합니다. 그러면 같이 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 한 아이의 엄마가 되시는데 어떤 엄마가 되고 싶으신지요?

"좋은 엄마가 되지는 못할 것 같고 알아서 크겠지요. .. 대학 안 간다고 하면 공부 안 시켜도 될 것이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이런 면에서의 좋은 엄마 행복한 엄마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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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2011, 마지막 소원 / 김여진    2011.12.22

사회문제, 다른 사람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 첫 시작은 4년 전 ‘어린이날 거리캠페인’에서였다. 드라마 <이산>에서 ‘정순왕후’를 할 때였고, 아시아에서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돕기 위한 거리캠페인에 참석하면서였다. 캠페인을 마치고 많은 사례들에 대해 들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북한 아이들의 참상. ‘기아’가 아닌 ‘아사’의 상태에 내몰린 사람들. 설명만 들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신 자신이 그 고통을 잊을까봐 단식중이시던 법륜 스님을 뵈었다. 48일째 단식중이셨고 여기저기 인도적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계셨다. 놀라웠다. 사람이 48일을 굶어도 죽지 않는구나. 저렇게 활동하고 말도 할 수 있구나. 그럼 얼마나 굶어야 사람이 죽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고 내친김에 굶어봤다. 5일째 되는 날 더는 견디지 못하고 미음을 먹으면서 눈물이 났다. 그 한 숟가락의 죽이 너무 따듯하고 맛있어서. 어지럽고 메슥거리고 온몸이 괴롭던 증상이 그 한 모금에 싹 가심을 느끼면서. 죽는 순간까지 그 고통에 처해 있을 사람, 아이들 생각에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꼭 밥 한번 먹자.

Posted by 김여진

너에게..

분류없음 2011/01/07 21:52


오늘 처음 본 너
.

홍익 대학교 총 학생회장.
미안, 이름도 못물어봤네
잘생겼더구나. 속으로 흥 미모로 뽑혔나보군 했다.
미안 물론 아니겠지..
주민 분들께 홍대의 지금 상황을 알리러나가셨다가
그제서야 막 들어오신 어머님들이 너를 맞으셨지.

난 한쪽 구석에서 국이 넘치지 않게 보고 있었고. (사실은 트윗보고 있었지ㅋㅋ)
너와
어머님들과 나누는 얘기 듣고 있었어.
네 얘기의 요지는
어머님들 도와드리고 싶다. 진심이다.
하지만 난 "비운동권"이라고 해서 뽑힌 사람이다.
나를 뽑아준 학생들은,
어머님들을 돕는 건 돕는 거지만
자신들의
학습권이 침해받는 거 싫다한다.
학교가 "외부사람"들로 채워지고
투쟁적인 분위기가 되는 거 싫다 한다.
그게 사실이다. 그런 입장을 가진 학생들이 날 뽑아서 내가 회장이 된거다.
돕고 싶다 .
그렇지만 먼저 "외부 분들"은 나가주셨으면 좋겠다.
학습 분위기 저해하는 현수막등을 치워 주시라.
그럼 학생들과 뜻을 모아 어머님들을 지지 하겠다.
진심이다
맞나?

옆에서 들은거라 확실한지는 모르겠다.

국은 다 끓었고 저녁식사를 하려고 반찬들을 담기시작했지.
어머님들은 너에게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고.
서로의 입장이야 어떻든
때가 되었으니 밥은 먹자고.


나도 그렇게 말했지.
사람은 밥을 먹어야 더 친해지고 그래야 말도 더 잘 통하는 법이라고.

넌 내옆에 앉았지.
내가
"자기도 많이 힘들지? 일단 밥은 먹자."
그 한마디에, 잘 못 본 걸까? 약간 울컥하는 것 같았어.
얼굴은자꾸 더 굳어지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던
.

난 아주 짖궂게,집요하게 같이 밥을 먹자했지
어머님들이 밥먹고 가라는 데 안 먹고 가면 더 욕먹을 거라고..

넌 정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어.
"정말, 그러고 싶은데요...정말..이 밥을 먹고 나면, 밥도 대접받고 외면한다고 또 뭐라고 할텐데.."

물만 한 잔 달라고 해서 입만 축이고
우리가 거의 밥을 다먹을 동안
그저 앉아 있기만 할 뿐 결국 한 술 뜨질 못하더구나.
어머님들도 나도 안타까웠다.

무엇이 널 그렇게 복잡하게, 힘들게 만들었을까?
누구의 잘못일까?

스펙에, 취업에, 이기적이길 "강요"받고 있는
너와, 너를 지지하는 학생들만의 잘못일까?

너희들을 그렇게 두려움에 떨게하고
아무것도 못 보게하고
언론의 화살을 다 맞게 만들고
어머님들이 주시는 밥 한끼 맘편히 뜨지 못하게 만드는 건
누굴까?

나부터 반성한다.

나의 두려움과 경쟁심과 무관심과
너희를 비난하고 책임은 지지않으려했던
그 날들을 반성한다.

.
네가 받고 있는 지금의 비난과 책임은
너의 몫이 아니다.

어머님들이 "노조"를 만들어
이렇게 맘대로 부려먹고 잘라버릴 수 없게 될까봐
어머님들의 시급의 몇 배에 달하는
대체 아르바이트생을 구해 쓰고 있는 학교당국
어떠한 대화도 나누려들지 않는 학교 당국

너희들의 총장, 이사장, 재단, 스승
그리고 이 사회가 져야할 책임이다. 비난이다.

스펙에 취업에 이기적이길 "강요"받고 있는
너와 너를 지지하는 학생들

너희들을 그렇게 두려움에 떨게하고
아무것도 못보게하고
언론의 화살을 다 맞게 만들고
어머님들이 주시는 밥 한끼 맘편히 뜨지 못하게 만드는 건
누굴까?

나부터 반성한다.

나의 두려움과, 경쟁심과, 무관심과
너희를 비난하고 책임은 지지않으려했던
그 날들을 반성한다.

.
네가 받고 있는 지금의 비난과 책임은
너의 몫이 아니다.

어머님들이 "노조"를 만들어
이렇게 맘대로 부려먹고 잘라버릴 수 없게 될까봐
어머님들의 시급의 몇 배에 달하는
대체 아르바이트생을 구해 쓰고 있는 학교당국
어떠한 대화도 나누려들지 않는 학교 당국

너희들의 총장, 이사장, 재단, 스승

너의 책임도 없다 못하겠다.
아무리 양보해도,
"학습권" "생존권"
중에,
너의 " 지지자들과의 약속"
타인이지만,
한 사람으로써공정한 대우를 요구하는 그 분들의 호소 중에
너희의 권리와
보편적 정의중에

, 무엇이 더 우선된다고 생각하니?
정말은 무엇이 맞다고 생각하니?


그렇더래도 난
네가 지금 짊어진 짐은 부당해보인다.
네가 받아야 할 몫은 아니다.

"악용"이라는 단어를 썼었지?
너희의 입장이 악용된다고.

그래 맞다.
넌 지금 악용당하고 있다.

너의 뒤에 지금 누가 숨어 있는지.
보이니?

맘이 아팠다.
네가 자리를 뜬 후
목이 메더라.

그리고
많이 미안해졌다.

힘들다. 이제 그만 그 짐 내려놔라.
그리고 꼭
밥 한번 먹자.